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아이에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17일 경찰과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1시15분쯤 대구의 한 고교 2학년 교실에서 김모(17·2년)군이 이 학교 배모(29·여) 교사에게 접이식 칼을 겨누며 휴대전화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김군은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만지다 벨 소리를 내 배 교사에게 압수당한 상태였다. 배 교사는 "일주일간 휴대전화를 보관하겠다"고 말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김군은 수업이 끝난 직후 교실 앞으로 나가 휴대전화를 달라고 요구했다. 배 교사는 그 자리에서 김군의 어머니와 통화해 "압수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어 김군이 자신의 어머니와 통화에서 "휴대전화를 돌려받아야겠다"며 언성을 높였고, 배 교사는 "어머니에게 무슨 말버릇이냐"고 꾸짖었다. 이때 김군이 주머니에서 길이가 10㎝가량(접었을 경우) 되는 칼을 꺼내 교실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칼을 주운 뒤 배 교사의 가슴 부분을 겨누며 "한번 해볼까. 휴대전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이때 학생들이 와 김군을 제지하면서 소동은 끝났다. 이날 방학 중 수업을 하던 학생들은 오후 1시10분쯤 모두 식사를 하러 가 교실에는 배 교사와 김군만 있었다.
( 기사 원문 주소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67&newsid=20120118001403691&p=joongang )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와 교사, 양쪽에서 접근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꿈꾸게 한다>의 머리글에 이렇게 적었었습니다.
어떤 부모여야 할까?
박선미 님의 「비상구(『오늘의 동시 문학』 수록, 21문학과 문화)」라는 시에서 그 답을 찾았다.
바깥에선 열리지 않아도
안쪽에선 언제나
쉽게 열려야 한다지
즉시
알 수 있어야 한다지
어두운 곳에서
환하게 불을 켜고 있는 비상구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용서해 주지
아무리 심술부려도
언제나 안아 주지
얼굴빛만 보아도
무슨 일이 있나 금방 알아차리지
언제나 급하면
달려갈 수 있는 비상구
우리 어머니
‘언제나 급하면 달려갈 수 있는’이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면서 내 아이가 혹여 세상사람 모두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내쳐져도, 모두가 외면하여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더라도 우리엄마만큼은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준다면, 그래서 언제나 급하면 내게로 달려올 수 있다면…….
하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많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이런 말이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라고 한다.
“어머니 학교에 오시라고 할까? 네가 한 일을 어머니께서 아시면…….”
“그 어떤 벌도 다 받을 테니 부모님에게만은 알리지 마세요. 다 할게요.
집에만 알리지 않으면 다 할게요. 부모님 아시면 정말 너무 실망하실 거예요. 절대로 안 돼요. 절대로.”
아이들은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 그 순간 자신에게 부모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야기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실망할 부모님의 모습이 가장 두렵기 때문에.
아이들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란다. 아이들에게는 실패,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괜찮아.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어. 괜찮아.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야.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이런 말과 함께 품에 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따듯한 위로를 바라지만, 아이들은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부모의 기대를 깨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실망할 부모에게 너무 죄송해서…….
“니가 이런 거 엄마 아시니?”
“니가 이런 거 아시면 엄마가 얼마나 실망하실까 생각하지 못했어?”
고등학교 시험에서 백지 답안지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 힘이 들었고, 어떻게서든 학교와 집, 모두에게 반항을 하고 싶었습니다. 여상에 가라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문계에 간 저였는데, 형편에 맞게, 가난한 집 맏이가 여상가서 얼른 돈 벌어 동생들 뒷바라지 할 생각은 안하고 지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기집애라며 나무라시던 아버지는 급기야 저를 집에서 쫓아내셨어요. 마음에 상처뿐만 아니라 몸에도 상처를 크게 남겨주시면서. 그래도 끝까지 고집을 부려 들어 간 인문계고등학교. 그런데 수많은 문제집으로 가방이 넘치는 친구들을 보면서 달랑 교과서뿐인 제 가방이 너무도 초라하고 느껴졌고, 그 초라한 가방이 곧 저 자신인 것 같아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어떤 교과 선생님은 보충 교재를 언제까지 준비하라고, 빌린 것인지 검사 할 테니 이름을 앞뒤에 적으라고 하셨어요. 도저히 문제집 살 돈을 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에서 빌리지도 못하게 된 저는 매일 보충 교재 없이 수업을 하는 아이가 되었어요. 그 시간들이 정말 저에게는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는데 부모님께도 선생님께도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에게서는 먹고 죽을 돈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선생님께는 이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고 어렵기만 했으니까요.
소통....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경험을 한 저이지만, 또 한 편으로 그것이 안 되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알게 된 저이기에 아이들과의 소통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엄마가 되었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거의 매달 시험을 쳤었는데 저는 중요한 시험에서 모든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하였고 선생님의 충격은 정말 크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게 백지 답안지를 내미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거였어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너 정신이 있어 없어? 엄마가 너 이러는 거 아시면 얼마나 실망하시겠니? 엄마 학교 오시라고 할까?”
그 말의 무서움을 저는 압니다. 어머니는 저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셨거든요. 힘들게 사시면서도 공부 잘 하는 딸이 유일한 기쁨이고 자랑이었던 어머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니까요. 그 자랑의 크기와 기대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선생님의 그 말씀은 제게 그 어떤 벌보다 무서웠고 잔인한 형벌이라 생각했습니다.
“니가 잘 돼야 한다. 니가 우리 집 맏이니까, 맏이가 잘 돼야 동생들도 그거 보고 배우고. 니가 잘 되어야 엄마 고생하는 낙도 있고, 니가 잘 되어야,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서 엄마 호강도 시켜주고 동생들 뒷바라지도 하고. 니가 잘 되어야.....”
귀가 따갑도록 들어 온 ‘니가 잘 되어야... 니가 잘 되어야....’
어머니의 저에 대한 기대에 대한 중압감은 저를 너무 힘들게 했고, 결국 그 기대를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것이 백지 답안이었는데... 저는 나름 계산이 빠른 영악한 아이였던 지라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백지 답안 제출 - 담임의 불호령과 함께 어머니 학교 호출 - 올 빵점 점수를 보고 충격 받는 어머니께 그만 저를 포기하시라고 말씀 드린다. 문제집도 한 권 못사는 형편에 무슨 공부를 하겠느냐는 말씀도 드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런데 어머니 아시면, 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제가 상상한 그 이상의 두려움으로 저를 더 힘들게 하더군요. 제가 평생 그 분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분은 제가 대답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울거나 반성을 하지도 않고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계시는 것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하시며 저를 돌려 보내셨어요.
그리고 며칠 후, 놀랍게도 선생님이 저희 집에 오셨고 어머니와 무슨 말씀을 나누셨는지는 모르지만 한참을 두 분이서 이야기를 하셨어요. 돌아가실 때에도 제게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그저 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시고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셨어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어머니는 저를 불러 마주 앉아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진작에 이야기를 하지. 엄마가 그렇게 무능력해 보였던 갑지? 문제집 살 거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를 해. 입 뗀 날 당장을 못 사줘도 엄마가 최대한 빨리 사 줄 테니까. 그런 일로 선생님을 집에 까지 오게 하면 쓰냐?”
교사가 된 뒤 그 일을 참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두 분 모두 말씀은 하시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백지 답안지를 냈고, 문제집을 사지 못해 몇 몇 교과 선생님들께 꾸중도 듣고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아이에게 집안 사정을 물을 수 없어 집으로 찾아 왔고 보니 한 눈에 사정 알겠다. 아이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으니 백지 답안지 일을 절대 나무라거나 혼을 내지 말고 도리어 잘 다독여주어라.
그런 말씀을 들은 어머니는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 같고요.
기집애, 많이 힘들었구나. 점수에 목숨을 거는 것이 전 과목 빵점을 맞다니...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것이 문제집 없이 앉아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꼬.
여기까지 생각을 하다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저희 어머니는 스스로의 힘으로 절대 이 정도까지 생각하실 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 글을 어머니께서 읽거나 동생들이 읽으면 많이 마음 상하겠지만 제가 아는 어머니는....^^
제가 아는 어머니는 이러셨을 것 같아요.
“니가 정신이 있는 애냐 없는 애냐? 뭐 답안지에 답을 하나도 안 적어? 전 과목 빵점을 맞어? 이 에미 죽는 거 보고 싶냐? 너 잘되는 거 보려고 이 고생을 하면서 사는 에미는 눈에 보이지도 않어? 어떻게 이렇게 나를 실망시킬 수가 있어? 그럴려거든 당장 학교 때려 치워.”
어머니는 문제집을 사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해, 딸의 상처는 보이지 않고 당신의 지난한 삶이 너무 슬퍼 그렇게 또 한 번 저에게 더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그날의 어머니는 다르셨어요. 그저 저를 보듬기에만 몰입하는 모습이셨거든요. 그건 선생님의 ‘부모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에게 흉기를 들이댔다는 아이를 잘 모릅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도 잘 모릅니다. 아니 이 기사에 적힌 것 말고는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건으로 우리 교사와 부모님간의 소통이 또 한 번 얼마나 절실한가를 깨닫습니다.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일주일간 빼앗는다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은 힘들어도 지켜야 하다는 것에 대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니가 가지고 놀지 말라고 했는데 가지고 놀았으니 뺏는다, 이건 벌이다, 라고 했을 때 순순히 받아들이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의 경우에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없게 되면 아이의 마음에는 불만만 더 쌓이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공부는 하기 싫고 심심하고... 그래서 휴대폰 좀 가지고 놀았는데 뭐가 그렇게 잘못 됐는데요? 나는 휴대폰 없이는 못 사니 돌려줘요.”
라는 아이들은 정말 많습니다. 저도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런 경우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휴대폰 때문에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할 정도의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선생님들께 부탁을 드립니다.
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을 만나면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고 생각하시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로 접근을 해주십시오. 그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과의 연계된 지도는 부모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가 없이는 굉장히 위험하답니다. 부모와 소통이 잘 안되거나 관계가 무너진 아이들의 경우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일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사와 학부모간의 소통이 절실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경우 ‘휴대폰 압수’라는 본질은 옆으로 제쳐두고 아이의 태도나 말투에 대해 꾸중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니가 잘못해놓고 어디서 고함을 지르고... 너 무슨 태도가 이래?”
이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이는 이미 휴대폰을 빼앗겨 맘이 상하고 화가 나 있습니다. 그 아이가 공손한 태도와 예의바르게 항의를 하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욕심이지요. 이건 교사나 부모님 모두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 하는 불만 중 하나가
“우리 엄마는 공부 뭐 이런 거로 이야기 시작하잖아요. 근데 꼭 가다가는 너 그렇게 밖에 말 못해? 엄마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이런다니까요. 엄마가 나를 화나게, 열 뻗치게 해놓고는 또 그거가지고 잔소리하고. 엄마는 성질난다고 오만상 찡그리고 고함을 지르고 다하면서 나보고는 성질부리지 말라고 하고. 진짜 어른들은 자기는 다 하면서 내가 자기처럼 하면 나쁘다고 하고.”
아이의 불손한 말투를 그래도 두라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하나씩 순서대로 갈등을 풀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휴대폰 압수’와 거기에 대한 ‘불복종’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순차적으로 아이의 태도와 말투에 관해 교육이 이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교사나 부모님의 태도와 말투는 더더욱 중요하지요. 비난이나 나무람이 아닌 교육이 되어져야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와의 연계 지도에 대해 덧붙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학교의 힘만으로 아이를 교육하고 변하시키는 것은 너무도 힘이 드니까요. 제 어머니께서 평소하고 달리 고함을 지르시거나 등짝을 때리시지 않고 저를 보듬으려 애쓰셨던 것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담임선생님의 ‘부모 교육’,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부모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학교로 부르시지 않고 저희 집으로 찾아오셨던 것은 아마 저뿐만 아니라 저를 둘러싼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잘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종종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가곤 합니다. 한 어머니는 밤 10시에 식당을 마친다고 하셔서 제가 어머니 일하시는 식당 앞에서 기다리다 집으로 모셔다 드리면서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의 환경을 보고 온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4시반 퇴근 하는 선생들 편하다고 하시지만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째 24시간을 선생으로 근무하는 것 같으냐고. 새벽 1시가 넘어 가정통신문 도장 받아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집에 안 오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아이의 전화를 받는 저를 보며 최소한 밤 10시 이후에는 통화불가라고 못 박으라고까지 하지요. 하지만 아빠와 둘이 살고 있는 아이는 그 이야기를 물어 볼 사람이 담임밖에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선생이 그렇게 까지, 부모교육까지 해가며 아이를 가르쳐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데 학교와 교사가 그것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도 하고요.
솔직히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부모교육, 부모 인성만큼은 사회가 그 역할을 나누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와 교사 그리고 사회가 공동 육아라는 인식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아이
저는 그 아이에게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에게 절실한 것은 부모가 그 아이를 껴안고 따듯함과 믿음 속에서 반성하고 제대로 된 가치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를 교사와 사회 전체가 도와주어야겠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벌은 받아야겠지요. 하지만 벌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여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뒤따르고, 그래서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 아이에게 지금 희망을 놓아버리면 그것은 결국 언젠가 우리에게로 되돌아 옴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아이는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의 이웃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겁니다. 내 아이만 보듬어 잘 키운다고 내 아이가 행복할까요? 나와 내 아이의 친구, 나와 내 아이의 이웃들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위치에서 <나와 내 아이의 친구들이 같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고 그 방법들을 같이 고민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