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시험기간 동안 아이들과 행복하신가요?

착한재벌샘정 2011. 10. 5. 00:56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건강하시시라 믿습니다.

요즘 아이들 시험 기간이시죠? 저희 정빈이도 내일부터 시험을 칩니다. 며칠 동안 열심히 공부하더니 오늘은 내일 새벽에 깨워달라고 하고는 10시 반 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험기간 동안 아이들과 행복하신가요?”

저희 집 개천절 휴일 오후 4시쯤의 거실 풍경은 이랬습니다.

남편은 거실 한 복판에 놓인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 정빈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수학 학습지중 풀리지 않은 문제를 푸느라 고민을 하고 있고 저는 모처럼 대청소를 하고는 지쳐 소파에 누워 반쯤 감기 눈으로 소파 끝에 앉은 정빈이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정빈이는 아버지가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 영어 본문 외운 것을 저에게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풍경은 정빈이 시험 기간 동안 저희 집에서 종종 있는 모습인데 이 시간동안 셋이서 사실 공부는 크게 하지 못하고 웃고 노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답니다. 정빈이가

“어머니가 옆에 있으면 같이 놀고 싶어 시험에 준비에 방해가 될 정도에요.”

라고 할 정도지요. 수학 문제가 잘 풀리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저희를 보고 이러는 겁니다.

“영어하는 너희들은 좋겠다. 영어는 머리 안 써도 되잖아. 아~~ 나는 지금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너희 둘은 지금 웃느라 정신이 없다니....”

그 말은 들은 정빈이

“아버지, 영어가 어떻게 머리를 안 써도 되는 거예요? 저도 지금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요.”

정빈이가 영어 본문을 읽으면 틀린 발음이나 엉뚱하게 외우는 바람에 웃을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겨우 한 과의 본문을 다 외운 정빈이가 거실 바닥에 큰대자로 드러누우며 투덜거렸습니다.

“아, 영어는 다 외울 시간이 도저히 없을 것 같으니 그냥 한 번 주욱 읽는 것으로 끝내야 겠어요. 근데 사회는 아직 한 번 도 안 봤는데 어쩌죠? 과학도 문제를 풀어야 하고... 국어도... 아, 진짜 할 게 뭐 이렇게 많아요?”

남편과 저의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어머니가 과학 선생님이니 적어도 과학은 100점을 맞아야겠지?”

이 때 정빈이의 대답은 도저히 글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키득 키득 웃으며

“아~~ 네에~~~”

이번에는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수학을 가르쳐주니까 수학도 만점, 맞아야겠지?”

이번에도 정빈이는 깔거리며 웃으며

“아~~네, 네, 네”

“영어도 100점 맞아야지. 어머니가 코피 투혼을 하며 대청소를 하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이렇게 너의 영어를 도와주고 있으니, 영어는 만점 받아야하는 거 맞지?”

“아하, 영어까지? 네, 네, 네.”

“사회도 마찬가지야. 아버지가 경제학을 전공한 증권회사 지점장인데 시장 경제가 포함되는 사회 시험은 당연히 백점 맞아줘야 하는 거 아냐?“

“사회도요? 그렇군요. 그럼 숨 쉴 수 있는 것은 국어 한 과목뿐인가요?”

“국어도 아니지. 어머니의 다른 직업이 무엇이지? 작가잖아. 작가 딸이 국어는 당근 만점이어야 하지 않을까?”

제 말은 들은 정빈이는 일어나 앉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조용히 일어서더군요. 그리고는 저희를 향해 아주 공손하게 배꼽 인사를 하고는 이러는 겁니다.

“제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그게 뭔데?”

정빈이는 다시 한 번 아주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이러는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집은 나가는 것, 그것뿐입니다.”

정빈이의 말투와 표정, 인사하는 모습에 저희들은, 진짜 빵!!! 터졌답니다.

이러니 어찌 공부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야기 하고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이지요. 남편은 정빈이의 수학을 도와주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합니다. 공부한 지가 언제적인 지도 가물가물한 오십이 넘은 남편은 아이가 풀지 못하겠다는 문제를 풀기 위해 책, 문제집을 뒤적여 가며 아이를 도와주려 최선을 다 하지요. 비록 물을 때마다 언제든지 척척 풀고 쉽게 설명해주지는 못하지만 아이는 자신을 위해 책을 뒤적이고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그 순간이 오래 가슴이 남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제 남편은 결국 아이가 물은 10문제 중 3문제는 풀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도저히 안 되는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러 가기 전에 갑자기 저를 휙 돌아보면서 이러는 겁니다.

“당신이 한 번 풀어 봐. 당신은 이과니까 나보다 나을지 모르잖아.”

부부 사이이지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잖아요. 남편은 아이들의 수학을 도와주는 것을 아주 행복해하고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걸 아는 제가 덥석 문제지를 받아 들고 풀 수는 없잖아요.

“당신이 못 푸는 문제를 제가 어떻게 풀겠어요. 저야 당연히 못 풀죠? 저는 영어 담당인거 알잖아요. 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마세요. 당신이 못 푸는 것을 보니 그건 진짜 어려운 문젠 봐요. 어쩌죠? 내일 하루 더 시간이 있으니 방법이 있을 거예요.”

남편이 내미는 학습지를 보지도 않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더니

“이과 출신이 어째 그러냐?”

하더니 공부를 너무 많이 했더니 피곤하다며 먼저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가더군요. 남편이 방으로 들어 간 것을 확인하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이렇게 다 풀었습니다.^^

 

 

이상하게 남편은 더 어려운 문제들은 풀었는데 상대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는 문제를 남겨두었더군요. 아마 너무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문제를 푼 것을 보고 정빈이는 세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나는, “아버지가 상처 받으시겠는 걸요?”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저는 못 푸는데 어머니는 왜 풀리는 겁니까?”

마지막 하나, 제가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제가 해놓은 메모를 보더니

"자자자, 잠깐만요. 이거 어떻게 푸는 지 알 것 같아요. 제가 해볼테니 말하지 마요? 말하지 마요, 아셨죠?"

문제를 다시 풀어보고 내린 결론은 둘 입니다.

문제를 딱 보는 순간 어떻게 풀어야 할까가 떠올라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직 미흡하고 그러다보니 생각을 오래하게 되고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 도리어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멍, 해지는 현상과 어릴 적 게으름으로 인한 느린 연산속도가 자신의 수학의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고. 시험 끝나고 연산 훈련을 해야겠다고 하네요.  

그리고 오늘 아침, 저보다 먼저 일어난 남편은 제가 풀어놓은 문제를 보더니 이러는 겁니다.

“아줌마, 이렇게 푸는 것은 나도 알아요. 그런데 이렇게 풀면 너무 복잡하니까 이것보다 쉬운 방법이 있는가를 물은 건데....이건 나도 아는 거라니까. 그리고 너 이거 푸느라 고생 좀 했겠구나? 밤 샌 거 아냐?”

저희 남편 너무 귀엽지 않으세요?

“그래요? 나는 이렇게 밖에 못 푸는데.... 이렇게 푸는 것도 진짜 힘들었는데... 밤 샐 뻔 했는데....”

“에그. 이렇게 푸는데 뭘 밤을 샐 뻔 했다는 거야? 엄살은?”

“아니, 진짜 힘들었다니까요. 나 오늘 몸살 날지도 몰라요. 영어 담당인 저에게 왜 수학 문제를 풀라고 그래가지고....”

저희 부부가 정빈이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은 수학을 잘해서도, 영어를 잘 해서도 아니에요. 그저 정빈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아이를 도와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가끔을 쩔쩔매며 문제를 풀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뿐이랍니다. 아이 시험 기간 동안 아이 공부에만 매달리느냐고요? 절대 그건 아니지요. 저희는 정빈이가 도움을 청할 때만 같이 하지요.

일요일에는 새벽까지 공부하고 늦잠을 자는 아이를 두고 남편과 둘이서 조조 영화를 보고 쇼핑도 하고 대구 미술관으로 데이트를 다녔습니다. 저녁때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고 정빈이는 아침 점심을 혼자서 챙겨 먹으며 자신의 계획대로 시험 준비를 하고요.

거의 혼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정빈이기에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해 왔고 이제 공부에 자신이 붙었다고 합니다.

정빈이의 시험 기간 동안 저희 집은 다른 때보다 웃을 일이 더 많고 정빈이와 더 친하게 지낸답니다. 제가 6일에 진해고등학교로 강연이 있었는데 5일로 날짜가 바뀌었다고 하니 정빈이가 그러더군요.

“딸 시험 기간에는 강의 일정 잡지 말라고 부탁 했었는데... 그래도 6일 보다는 5일 출장이 나아요. 5일은 어차피 다음 날 시험 칠 과목 공부해야하는데 어머니 계시면 같이 놀고 싶어 도리어 없는 게 나을지 몰라요. 하지만 시험 끝나고 왔는데 어머니 출장이라 늦게 오면....그건 정말 싫죠.”

정빈이는 시험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엄마의 위로와 격려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기억하시죠? 큰 아이 예슬이가 대학 입학을 하면서 집을 떠나며 저와 같이 살면서 시험 끝내고 집에 돌아 왔을 때 단 한 번도 잘 쳤느냐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참 크게 생각이 나더라던 이야기요?

시험 기간 동안, 아이들이 시험에 짓눌린 마음을 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조금은 풀 수 있었으면, 위로받고 격려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이가 풀 지 못하겠다는 문제 중에 지금 정빈이의 실력으로 풀기 힘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내일 모레가 시험인데 아이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들을 설명하고 풀라고 해본들 수학에 대한 부담감만 크게 만들 뿐일거야. 지금까지 한 것 중 자신감을 줄 수 있는 정도의 문제들이 아이에게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고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 안되는 건 시험에 나온다면 틀리는 수 밖에 없지만 멀리 봐야 하는 거니까. 당장 한 문제를 더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 시험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갈 수 있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지금까지 정빈이가 그래도 참 고마운 것은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포기해버리지 않고 어떻게 푸는 지를 꼭 물어 준다는 거야. 그것만으로도 정빈이는 충분히 잘 해낼 거라 믿어."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남편이 교사가 되었어야 하는데.... 참 따듯하고 멋진 선생님이 되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