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4>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여우짓 그녀의 이야기 4
- 뭐? 장금이 손? 남편 시켜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주부들이 자주 보는 아침 프로에 보면 부부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칭찬하라는 말 자주 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눈 씻고 봐도 칭찬할 거리가 있어야 칭찬을 하죠? 아마 저뿐만 아니라 여자들 대부분이 저와 같은 생각일걸요.
‘도대체 뭘 칭찬하라는 거야? 하루 종일 잔소리를 해도 모자라는 판국에 칭찬 좋아하시네.’
제가 정말 그랬거든요. 그런데 한 번은 남편 친구 집에 갔는데 세상에 그 집 남편은 정말 100점, 아니 100점이란 점수가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그 순간 또 울컥하는 거예요.
‘친구라는 어떻게 이렇게 달라? 친하다면서 좀 배우기라도 하지? 어이구 인간아.’
그런 생각을 하며 남편을 째려보고 있는데 남편이 이러는 겁니다.
“잘 봐. 이 친구 와이프가 남편을 어떻게 대하는 지. 몇 번 안 봤지만 정말 100점, 아니다 100점도 모자랄 정도라니까.”
얼씨구, 싶은 거예요. 기가 차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래서 천생연분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날 배운 노하우가 뭔지 아세요? 칭찬하며 제대로 가르치기였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당장 시도를 해 봤죠.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연습해보기 딱이었거든요. 점심을 준비하면서 남편에게 그랬어요.
“어제 그 친구 부부 참 보기 좋더라 그지?”
“그렇지 그렇지? 그 집 와이프 진짜 잘 하잖아. 그 자식 장가 하나는 진짜 잘 갔다니까.”
예전 같으면 이 대목에서 케이오 펀치가 날아갔을 거예요.
“어떻게 자기 눈에는 그 집 와이프 잘 하는 것만 보이니? 내 눈에는 남편이 훨씬 더 잘하더구만. 아, 남편이 그렇게 잘 하는데 여자가 그 정도도 안하겠냐? 나는 그런 남편하고 살면 그 여자보다 열배 아니 백배는 하겠다.”
뭐 이 정도. 그러면 결과야 뻔하죠. 하지만 그날은 배운 것이 있는데 달라져야겠다 싶었어요. 사실 이만한 것이 목까지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친구 부부 모습이 부러운 마음이 더 컸거든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반성하고 있는 중이야.”
그런 저를 보면 남편은 ‘어....’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내가 한 방 먹일 테고 자기도 다시 한 방. 뭐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오늘부터 잘 해보려고. 근데 자기도 도와줘야 해. 지난 번 처럼 뭐 잘못 먹었느냐는 둥, 하던 대로 하라는 둥 핀잔주지 말고. 이렇게 애쓰는 마누라 기특하잖아, 안 그래?”
남편은 말까지 더듬지 뭐예요.
“야, 야, 야.... 내가 뭐, 뭐 뭐?”
“솔직히 그렇잖아. 좋은 모습 보고 배우고 따라 하려는데 핀잔주면 무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렇거든. 그건 아마 자기도 마찬가지일걸? 난 그 점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있어. 지난번에 당신이 김치찌개 한다고 했을 때 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그랬던 거 미안해. 모처럼 마누라 위해 요리한 거 였는데.... 사실 그 때 맘속으로는 고맙고 쬐끔 감동까지 했었는데 말이 마음하고는 전혀 다르게 나와 버리더라고. 당신이 김치 냉장고 뚜껑에 김치 국물 흘려 놓은 거 보니까 화가 나서. 요리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데 말이야. 당신이 날 위해 김치찌개를 해 준 것이 중요한데 나는 중요한 것은 놓치고 엉뚱하게 더러워진 김치 냉장고에 신경을 썼던 거야. 그건 쓰윽 닦으면 되는 거였는데.”
“야, 김소영? 너 진짜 왜 이래?”
“내가 뭘?”
“나 지금 조금 불안하고 무서워.”
“헉!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어제 그 부부보고 생각 많이 했다니까. 난 진짜로 그 두 사람 부러웠거든. 자기도 부럽다고 했잖아?”
“그거야.... 그랬지. 그런데....”
남편은 진짜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이었다니까요. 웃겨 넘어 가는 줄 알았어요.
“내가 점심 맛있게 해 줄 테니....”
“아, 알았어. 설거지는 내가 할게.”
“정말? 자기가 설거지 할 거라고? 설거지는 다시는 안한다고 했잖아?”
“그거야.... 나는 애써 한다고 했는데 자꾸만 잔소리를 해대니까 그렇지.”
“잘해봐 내가 그러나. 설거지라고 그릇만 달랑 씻으니까 그렇지. 게다가 꼴난 그릇 몇 개 씻으면서 물은 온 사방에 튀게 하고. 제대로 헹구지도 않고. 자기 입에도 들어가는 그릇인데 그렇게 씻고 싶니? 개수대 음식 찌꺼기는 치우지도 않고. 행주는 깨끗하게 빨아서, 삶지는 않아도 깨끗하게는 빨아서 잘 펴서 말려야 할 거 아냐. 그래 놓고 설거지 했다 생색은 또 얼마나 내? 남들이 보면 자기 혼자 부엌살림 다 사는 줄 알게 말이야.”
뭐, 이러고 싶은 걸 다시 한 번 꿀꺽, 참았죠.
“그러게. 그렇게라도 도와주는 게 어딘데, 그지?”
“김소영, 너 진짜 오늘.... 히야, 이거 정신을 못 차리겠네.”
점심을 먹은 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개수대 앞에 선 남편.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물도 많이 튀지 않는 거예요. 그릇도 어찌나 정성 들여 헹구는지. 갑자기 또 울컥 하는 거예요. 이 인간이 잘 하면서 하기 싫으니까 그랬었나 싶은 것이.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너무 우습더라고요. 뭘 하나 있는 그대로 봐주질 않고 어찌나 꼬아 보아는 지.
설거지를 다 했다고 돌아서는 남편. 아니나 다를까 싱크대는 물투성이고 행주도 돌돌 말아 짜놓은 것이....
“자기야, 어제 그 집 와이프한테서 재미있는 이야기 들었는데 해 줄까?”
“뭔데?”
“그 집 남편, 당신 친구가 처음부터 집안일을 잘 한 건 아니었대.”
“하긴 그 자슥, 대학 때 놀라 가도 숟가락만 들고 뺀질거리던 놈이라니까. 그러고 보니 장가가더니 변했네. 그것도 엄청.”
“그 친구가 설거지를 했는데 그릇 몇 개 씻는데 주방을 온통 물난리가 난 것처럼 해 놓았드래.”
“자식, 물을 잘 조절해야지.”
큭, 그러는 자기는, 싶었지만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죠.
“그 집 와이프 뭐라 했을 것 같어?”
“너 같지는 않았겠지, 설마하니. 설거지를 한 게 아니라 물장난 한 거냐고 난리를 친 너랑은 다르지 않았을까?”
“그러니 내말이. 그 집 와이프는 이렇게 말했대. 고마워.”
“고마워? 뭐가 고마워? 물 튀겨 놓은 게?”
“아니. 난 자기가 설거지 했을 때 설거지한 수고보다는 튀져 진 물이 먼저 보였는데.... 그 집 와이프는 남편의 수고를 가장 먼저 보고 늘 고맙다는 말을 한 대. 그것만이 아니라 이랬다는 거지. 자기야 설거지를 할 때 물 튀어서 옷 다 버렸지? 자기 축축한 거 싫어하는데 어떡해, 이랬대네.”
“우와, 대단하다. 자기 같으면...”
내가 뭘, 뭘? 하는 대신
“그러게. 나 그 대목에서 진짜 반성 많이 했다니까. 싱크대와 주방 바닥 물 튄 거 보다 남편 옷 젖은 걸 먼저 걱정하는 아내라.... 그러면서 여자들이 설거지를 할 때 왜 앞치마를 하는 지를 이야기 했대.”
“솔직히 난 진짜 앞치마 두르고 있는 남자 꼴불견이던데. 남자 망신시키는 것 같고.”
“그러게. 자기 친구도 앞치마 두르는 걸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지. 그런데 앞치마가 남자의 위신 뭐 이런 문제를 떠나 옷이 젖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앞치마를 입더라는 거야.”
“그런가?”
“그런 다음에 행주를 깨끗하게 빨아서 물기를 꼭 짠 다음에 싱크대에 있는 물기를 없애면서 그랬다네. 이렇게 물이 있으면 지저분하고 위생적인 면에서도 좋지 않으니 보송보송하게 닦는 거라고.”
남편이 휙, 고개를 돌려 우리 집 싱크대를 보더군요. 당연 이리저리 물이 튀어 있고 약간 기운 곳에는 물이 흥건이 고여 있었죠. 갑자기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모른 척 했어요.
“그런데 당신 친구 참 유머 있는 사람이야. 싱크대를 보송보송하게 물기 없이 하라는 와이프 말에 이랬다잖아. 싱크대가 무슨 애기 엉덩이냐? 보송보송하게 하게? 너무 멋진 유머 아니야? 나는 그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그려져. 우리하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
“그 자식 은근 폼 잡네.”
“우린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거야. 조근조근 서로가 마주보며 여유 있게, 유머러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마치 따발총 쏘듯이 쏘아대기만 했던 거지. 우리 둘 다 말이야.”
“...........”
“당신만 잘못했다는 거 아냐. 그 집 와이프가 그러더군. 남자들은 잘 모르더라고. 안하는 줄 알았는데 몰라서 못하는 거더라고. 특히 집안일은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거지. 하긴 여자들인들 솔직히 결혼하기 전에 집안일 제대로 해본 사람 없지만 그래도 남자들 보다는 조금, 쬐끔은 낫다는 거야. 그리고 할 줄은 몰라도 어떻게 해야 하나는 지 정도는 감으로도 안다는 거지. 조금 더 나는 사람이 제대로 알려주면 되는 거라고.”
결혼하지 다섯 달이 지나서야 그날 처음으로 우리는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봤어요. 아무도 안 가르쳐주었잖아요. 결혼식을 어디서 하고 웨딩촬영을 누구에게 하는 지에 관해서는 서로 알려주지만 정말 중요한 두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전하며 어떻게 살아갈 지에 관해서는요. 살아보라고, 살아가면서 맞춰간다는 정도. 그저 살아지는 건 줄 알았어요.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였고요.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많았어요. 누가 그러더군요. 부부가 사는 것은 배드민턴 치는 것 같다고. 한쪽에서 부드럽게 공을 넘기면 되받아치는 사람도 최대한 부드럽다고. 그래서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즐길 수 있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날카로운 공격을 하게 되면 다른 한 쪽도 그 못지않은 공격을 하게 된다고. 결혼, 두 사람이 함께 즐겁고 행복해야지 하잖아요. 어느 한 쪽이 이길 이유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