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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1>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착한재벌샘정 2009. 8. 6. 09:33

 

 

나의 여우짓, 그 이유는?

 

 

고등학교 동기회 체육대회를 갔을 때 일이다. 점심으로 운동장 한 구석에 숯불을 피워 돼지고기를 구웠는데 술을 조금이라도 덜 먹으려는 작전(?)으로 남편이 그 일을 자청했다. 고기를 굽는 남편 옆에 서서 금방 구워진 고기도 먹고 남편을 위해 이것저것 시중도 들다가 고기는 어느 정도 먹었으니 밥과 국을 준비하자는 말에 부인들이 모인 곳으로 가려는데 얼핏 이런 말이 들려왔다.

“너희 부부는 나이 차가 많은가 보네?”

부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같은 질문이 날아 왔다.

“나이 차가 많은 가 봐요?”

내가 동안이라서?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아까 옆에서 고기 같이 굽던 그 친구가 우리 나이 차가 얼마나 되는 지 물어.”

“그래서요?”

“열 살 붙여서 열네 살 차이 난다 그랬지. 근데 그 친구 반응이 뭐였는지 알어?”

“설마 그걸 믿어요?”

“그 친구 말이... 너희 집 사람은 너한테 예, 그래요 하네? 우리 마누라는 나만 보면 곧 잡아먹을 듯이 하는데. 그래서? 어쨌다고? 라는 말을 달고 산다니까. 나이가 차가 그렇게 많이 나니까 너한테 곱살 맞게 예 예 하는 거구나 이러더라니까.”

“그래요? 부인들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그 이야기 나왔었는데. 내가 자주 부부 모임에 가지도 않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회장단이 바뀌어서 그럴 거야. 자기들끼리는 잘 알지?”

“네.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더라고요.”

“뭐라 그래? 그 아줌씨들이?”

“다른 사람들의 아내보고 아줌씨라 하지 마요. 특별히 나쁜 말은 아니지만 만약 당신 친구가 나를 보고 그런 투로 말한다면 난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마요, 부탁해요. 아, 내가 하려던 말, 사람들이 나보고 애교가 장난이 아니라고요. 그러면서 그래요. 여자가 저러면 좀 좋아, 어느 남자가 안 좋아 하겠어 여자인 내가 봐도 좋은데 남자는 오죽하겠어, 저렇게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는데 살살 녹지, 나 같으면 남편이야 고기를 굽든 말든 장갑이 더러워져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하든 말든 상관 안하고 나 먹는 거 바쁠 텐데 옆에 붙어 서서 수고 한다 애쓴다 말해주고 맥주 따라 먹여주고 장갑 새 거 갔다 갈아라 챙겨주는 마누라 얼마나 이쁘겠어, 하면서요. 안보고 안 듣는 것 같아도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지.... 그러면서 결론은 이래요. 그것도 다 타고나야 하는 거다 하고 싶다고 되는 줄 아느냐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거다. 무뚝뚝한 마누라랑 사는 우리 집 남자가 불쌍한 한 거지, 뭐.....”

아내들은 남편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스스로도 변하지 않는다. 타고 난 걸 어떡 하냐고?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거라고.

생긴 대로 산다?

남편의 이상형은 배우겸 가수인 이정현이다. 주먹 만한 얼굴에 작고 여린 몸매의 인형 같은 그녀. 그런데 마누라인 나는... 김혜수? 20대에는 이휘향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내 강의를 들은 한 선생님이 옆모습이 장미희를 닮았다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 별명 중에 부은 장미희가 있어요."

그날 여러 사람 참 유쾌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김혜수든 이휘향이든 부은 장미희든 이정현과는 거리가 멀어도 엄청 멀다.

“어머니 어떡해요.”

남편과 수퍼에 장보라 갔다 온 딸아이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내 눈치를 본다.

“왜?”

“슈퍼에서 막 나오려는데 이정현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슈퍼에 노래 계속 틀어 놓잖아요.”

“그래서?”

“아버지가 거기 서서 이정현 노래 다 듣고 집에 가자고....”

“그래서 둘이서 슈퍼 문 앞에 서서 그 노래 다 듣고 왔어?”

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에~.”

그 옆에서는 남편이 장 본 보따리를 들고 헛기침을 헛헛 해가며 멋쩍은 듯 서 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잘했네. 아버지 이정현 좋아하잖아. 그런데 요즘 그 사람 활동이 뜸하니 노래 들을 기회도 잘 없었는데 모처럼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들을 수 있었으니 좋았겠네. 그런데 어떡하다니 뭘?”

갑자기 남편이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표정으로 아이를 향해 말한다.

“봐라. 엄마 말 들었지? 좋아하는 가수 노래를 들은 것뿐이야. 엄마도 좋았겠다고 하잖아.”

그러고는 혼잣말로 투덜거린다.

‘딸 아니 랠까 봐. 지 엄마 걱정은.’

어쩌면 이런 생각까지 했을 지도 몰를 일이다.

‘아들이었어 봐. 이런 아버지 이해해주지.’ 푸하하하

남편이 자신의 이상형인 이정현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마누라와 살고 있으면서 날보고 이정현처럼 되라고 한다면?

남편이 대왕세종을 열심히 보는 이유도 이정현 때문이다. 마누라에게 물어 가면서.

“이정현은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나오기는 나오는 거야?”

그러면 이정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마누라는 대답한다.

“쫌만 기다려 봐요. 나올 테니. 꽤 비중 있는 배역이에요. 나름 조사해보니 이정현이 맡은 역이 세종과 아들만 여덟을 낳았다고 하던가. 하여튼 세종과 긴 인연으로 살았던 사람이니 매일 매일 아주 많이 나올 테니 그렇게 안달하지 말고 진득히 좀 기다려 봐요.”

남편은 또 묻는다.

“악역은 아니지?”

“에구구 울 남편, 이쁜 이정현 악역일까 신경 쓰이니 보네. 악역이야 나 같은 이미지가 딱 어울리지. 이정현이야 어울리겠어요? 걱정 말고 보셈.”

슬쩍 눈치를 보더니 한 마디 한다.

“내가 당신 닮은 이휘향 나오는 드라마 열심히 보는 것도 알지? 당신 닮은 사람 나오는 드라마도 열심히 본다니까.”

그래서 한 마디 해줬다.

“고마워하고 있어요. 나보고 이정현처럼 되라는 말 안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77사이즈가 44, 글쎄 이정현 44도 될라나? 불가능한 거 아는데 나보고 그렇게 되라 소리 안하니 말이에요. 두 배는 될 듯 한 이 얼굴 크기는 또 어떡하고.”

남편은 절대 안 들리게 마음속으로 한 말이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잘 들린다.

“두 배는 무슨. 한 서너 배는 되겠구만.”

이렇게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변해야 하는 것도 있고 변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변해야 한다.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누가 먼저 변할 것인가? 늘 여기서 멈춰버린다. ‘변하는 것’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누가 먼저’로 옮겨가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내가 먼저였으면 한다. 당신도 아내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아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목마른 자, 바로 나를 비롯한 여자, 아내들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남편들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 이대로 였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목마른 자로서의 <필요조건>뿐만 아니라 아내들이 가진 <충분조건>도 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인정 할 것이다. 아이를 대하는 엄마와 아버지의 다름을. 그것은 아내와 남과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다름에 대에 인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그릇도 아내가 크고 조금씩 변하해가는 것을 지켜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는 능력도 아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보다 강하면서도 부드럽다. 아내는 남편보다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남편보다 언어 능력도 월등하여 표현하는 것에서도 우위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도 안다. 남편이 바뀌었으면 하는 필요조건과 남편을 바꿀 수 있는 충분조건을 다 갖춘 아내가 조금 먼저 시작해 보자.

아내들은 원한다. 원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어디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들은 모른다. 아내가 무엇을 원하지는 지도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그것은 배워야 것이지만 대부분의 남편들은 그 어디에서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살아오신 것을 보는 것 외에는. 하기 싫고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내는 배우지 않아도 ‘바라는 것’이 생기지만 남편은 배워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왜 내가 먼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대로 몰라서 못하는데 그를 원망하고 탓하기만 한다면 문제는 늘 제자리걸음만 할 것이다. 모르는 것은 제대로 알게 해 주면 된다.     

아내들이 자주 하는 말

‘나 혼자 좋자고 하는 거 이러는 거 같어?’

다 같이 좋자는 일이라면 굳이 남편부터 하라고 할 거 뭐있을까, 내가 하면 되는 거지.

타고났다고? 생긴 대로 산다고?

19번째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한 말이다.

“당신은 점점 착해지는 것 같애. 말도 더 예쁘게 하고.”

이건 내가 예전부터 착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말도 지금처럼 조근조근 곱살 맞고 애교스럽게 하지 않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른 넘은 딸이 이제는 결혼을 했으면 하는 사촌 언니는

“우리 딸은 다 좋은데 날 닮아 그런 지 무뚝뚝해. 애교라곤 없어서....”

남편이 말했다.

“병원에서 우리 집도 가까운데 퇴근길에 우리 집에 들러 집 사람한테 좀 배우라고 하세요. 애교라면 예슬이 엄마잖아요.”

그 말을 듣고 계시던 친정어머니

“남도 아니고 같이 사는 남편이 저러니 더 말할 것도 없지 뭐.”

나는 변하고 싶었다. 그리고 변하려 노력했고 남편의 그 말이 내가 변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변했을까? 예쁜 짓 여우짓을 하는 ‘그녀들’의 노하우를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