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이 한 번 되어봐
날씨가 더워지자 수업시간에 스르르 감기는 눈을 힘겹게 뜨는 아이들이 있어요. 잠을 이겨보겠다고 눈에 힘을 주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에게 수업시간에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한참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눈꺼풀요. 특히 점심시간 지나 자꾸 내려오는 5교시의 눈꺼풀은 진짜 어려워요.”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아이들은 무지 공감이 간다고 그러네요.
밥 먹은 뒤에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은 밥을 먹음으로써 배가 나오게 되고 배가 앞으로 나오려니 피부가 당기게 되고 그로 인해 온몸의 피부가 배를 향해 당김 현상이 일어나다 보니 눈꺼풀도 배를 향해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배가 꺼지고 피부 당김 현상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눈꺼풀을 위로 뜨는 건 역부족이라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는데 웃기기 위해서 하는 얘기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아이들이 조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많이 미안해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 따라 눈이 감기기 직전의 학생이 유난히 많은 것 같네요. 미안해요. 여러분을 졸리게 해서. 그런데 선생님도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에요. 파워포인트 만든 거 일일이 화면에 띄워 보면서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신기하게 만들어보려 애를 썼거든요. 적절한 자료를 찾느라 수백 개의 동영상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그런데도 부족했던 모양이에요, 여러분들을 수업에 끌어들이기엔 말이죠. 선생님이 조금 더 노력할게요. 그러니 여러분도 조금만 애써줘요. 아,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진짜 졸음이 쏟아지는 건 선생님이에요. 새벽까지 수업 준비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요. 만약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잠이 와서 교탁에 엎드려 잠시 잔다면 여러분들은 어떨까요?”
그러자 아이들 표정이 묘해지더군요. 이왕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하자 싶어 계속했어요.
“생각해봐요. 내가 여기 교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고. 그럼 여러분은 선생님이 정말 피곤하신가 보다, 우리가 이해하고 잠시 주무시게 조용히 자습하자, 할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걸요. 뭔데, 수업하다 말고 잠이나 자고, 하며 화를 내지 않을까요? 수업하다가 엎드려 자고 있는 여러분 모습을 보면 참 미안해요. 가장 큰 책임은 선생님에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거 다 알고 참 많이 미안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속상하고 엎드려 자는 아이가 미워지려고 해요. 그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미안하면서도 속이 상하는. 내 탓인 줄 알면서 그 아이가 조금은 원망스러운. 내가 이렇게 애써 준비해온 것을 봐주고 들어주지 않다니 하는. 뭐랄까, 거절당한 기분이랄까요. 미안함과 서운함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끼죠.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선생님도 여러분들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선생님에게 수업은 참 중요해요. 수업은 선생님의 중요한 인생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준비하고 늘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것이 학생들에게 별 의미가 없는 것 같거나 학생들과 교감하지 못한 채 수업이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상처를 받아요. 교사 혼자 열심히 말하고 판서한다고 해서 그게 수업은 아니거든요. 수업은 여러분들과 같이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기 위해 수업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닌데 문득 나 혼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참 힘들어요.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죠.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선생님을 이해해달라고 하면 그건 억지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도 가끔 앞에 나서서 이야기할 때가 있잖아요. 많이 준비해서 떨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앞에 섰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딴 짓을 하거나 엎드려 잔다면 어떨까요. 아니,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딴 곳만 쳐다본다든지, 휴대폰 문자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든지, 아예 턱을 고고 꾸벅꾸벅 존다면요?”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 도서관에서 『블랙 라이크 미』(살림)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땐 ‘흑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담’ 하며 스쳐 지나갔답니다. 그런데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오면서 온몸이 굳는 것 같았어요.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마이클 잭슨처럼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어할 수는 있어도 백인이 흑인이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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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건만 존 하워드 그리핀은 피부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피부색을 바꾸어 진짜 흑인이 되어본 것입니다. 막연히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에서(이 책은 45년 전에 쓰여졌습니다)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 백인은 있었겠지요, 머릿속의 생각으로만.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감동과 충격이었어요. 진짜 흑인의 입장이 되어 살아본 생생한 경험. 단 한 사람의 경험이었지만 그것이 책을 통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탠저린』(보물창고)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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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중학생 폴이 이사 온 동네는 귤 농장을 갈아엎어 만든 신흥 고급 주택지였어요. 반대쪽은 여전히 귤 농장 지역이고, 어른들은 수준이 다르다며 농장 지역의 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하지요. 천재지변으로 교실이 무너지면서 농장 지역의 중학교로 전학 가게 된 폴은 그곳의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우정과 참된 노동의 가치를 알아갑니다. 고급 주택단지에 살면서 농장 지역 학교를 다니는 폴과 농장 지역에 살면서 그것을 숨기고 고급 주택단지의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같은 『탠저린』은 우리에게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를, 그리고 마음속 이야기를 진실되게 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학교 옮기고 갑자기 일이 많아진데다가 손을 다치는 바람에 사정이 여의치 못해 아침독서신문 식구들의 고마운 배려로 연재를 쉬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