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자식이라는 존재는 그런가 봐요.

착한재벌샘정 2009. 6. 9. 23:11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려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무엇부터 써야 할 지 갈등이 생깁니다. 다들 건강하시죠?

건강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먼저 할게요.

제가 요즘 바쁘기도 하거니와 이리저리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아 신경을 엄청 썼더니 마침내 몸살이 났나 봅니다. 퇴근 해 소파에 누웠는데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서는 발가락이 꼬인 거예요. 정빈이보고 주물러 달라고 했지요.

“근데 왜 이래요?”

“그거야... 어머니가 서서히 늙어가고 있어서 그런 거지. 예전만큼 체력이 되지는 않거든.”

한참을 말없이 제 발을 주무르고는 이제 괜찮으시냐고 묻는 정빈의 목소리에 물기가 듬뿍하더군요. 저를 바라보는 눈은 빨갛고 얼굴에는 발을 주무르느라 닦지 못한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게 울 건 없어.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되는 거야. 이렇게 말하긴 아직 좀 이르지만 늙고 병들고 하는 거야.”

“........”

“이제 조금은 알겠니? 어머니가 더 이상 젊지만은 않다는 거. 그럼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아버지는 더 하겠지?”

솔직히 저는 반 농담이었는데 정빈이는 아주 진지했던 모양이에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 옆에 와 눕더군요. 그렇게 둘이 눕긴 좁은 소파에 붙어 누워 한참을 있었습니다. 아이의 체온이 참 따뜻하더군요.

자식이라는 게 이런 존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으로 찌르르 무엇인가가 흐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기운을 내야지 하는 마음이 일도록 해주는.... 참으로 큰 존재인 것을요.  

모든 부모에게 자식이야 다 그렇겠지만 정빈이는 많이 어렵게 제게 왔고, 그리고 더 많이 어렵게 제 곁에 머물러 준 아이잖아요. 이제는 정말 다 컸구나, 싶을 때가 참 많아요. 교복을 아주 좋아해 집에 와서도 교복 차림으로 있을 때가 많은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쁘답니다. 자칭 ‘교복마니아’랍니다. 그런 정빈이를 보고 남편은 교복 닳으니 아껴 입으라 잔소리(?)을 하곤 한답니다. 아침마다 전기 고대기로 머리를 다듬고 얼굴에 몇 개 난 여드름이 고민이라며 1시간도 넘게 화장실에서 씻고 씻고 또 씨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난답니다.

기특한 일도 가끔 하고요. 오늘도 제가 퇴근 해 오니 밥솥이 열심히 밥을 하고 있는 소리가 나더군요. 정빈이가 제가 오면 바로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밥을 해 놓은 것이었어요.


집에만 예쁜 아이가 있는 게 아니에요. 저희 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학교가 4월에 이사를 하고 난 뒤 지금까지 과학실이 없는 상태라 아이들이 힘들게 공부를 하고 있어요. 지금의 교과서는 거의 대부분 실험을 먼저 하고 그로부터 기념과 이론을 이끌어 내도록 구성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큰데 고맙게도 아이들은 잘 따라 주고 있답니다. 날씨가 더워지니 가끔 수업 시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해 아주 귀여운 모습을 하는 공주들이 있어요. 오늘도 그런 아이가 있었어요. 평소에는 열심히 들어 주는 아이였는데 오늘은 도저히 졸음을 이길 수가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만 빼고는 다들 너무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깨우기 위해서는 30명 아이들의 수업을 잠시 중단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이들의 태도가 너무 진지하고 몰입하고 있는 거예요. 잠시 갈등을 했어요. 그러다가 한 십분 자고 나면 되겠지 하고 계속 수업을 했는데 좀 길에 15분 정도 엎드렸던 아이는 얼굴을 들더니 몹시 멋쩍어 하더군요.

그리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그 아이와 마주쳤어요.

“여보세요, 아가씨. 오늘 선생님이 많이 섭섭하던걸.”

수업 시간의 일로 아주 미안한 얼굴로 마주 걸어오고 있는 아이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으며 말했습니다.

“그게요... 진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수미(실명 공개를 못하겠네요.^^ 이해해주세요) 참 좋아하거든. 그건 알고 있지? 우리 수업 시간에 서로 눈으로 주고받는 이야기도 많잖아. 너도 선생님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아니요. 저도 선생님 좋아해요. 진짜에요.”

“으흠~~~ 그래. 그럼, 좋아하는 거 하고 수업시간에 잠자는 거 하고는 별개의 문제인가, 그런가?”

“진짜 쌤 좋아한다니까요. 근데 오늘은 너무 너무 잠이 오는 거예요..... 죄송해요.”

아이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운동장을 조금 걸었습니다. 

“아니야, 가끔은 그럴 수 있어. 근데 선생님이 서운한 것도 사실이야. 나중에 선생님도 수미 한 번 서운하게 할 거다. 그렇게 갚아도 되지?”

“아잉, 그러지 마세요. 진짜 안 자려고 노력은 했다니까요.”

“그래? 알았어. 그럼 다음 시간부터는 조금 더 노력해 달라 부탁할게. 그래 줄 수는 있지?”

“네에~~ 노력할게요.”

수미는 과학이 많이 어려운가 봐요. 기초 학력이 많이 떨어지는 아이인데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볼 때 마다 참 기특하고 고마운 아이랍니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게 되는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교사의 수업을 알아듣지 못할 때가 큰 비중을 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를 모르니 그 시간이 얼마나 지겹고 힘들겠어요. 그래서 학기 초에 교과서 진도 들어가지 않고 2주 정도 모든 아이들의 기초 학력 부진을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그 부분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한 덕에 수업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알아 듣겠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많아졌어요. 가장 큰 수고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해 주었어요. 뒤쳐져 있는 친구들을 위해 보조교사 역할을 열심히 해주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수미도 수업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중이에요. 수업 시간에 눈이 마주치면 그 선한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어 보이곤 해요. 가끔은 어려운 내용 때문에 난감해 하기도 하고 괜히 옆 친구들의 눈치를 볼 때도 있어 마음이 짠~~ 하기도 하답니다. 그래도 처음처럼 몰라도 잠자코 있지 않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아이의 모습은 저를 참 행복하게 해주어요. 몰라서 묻는 친구에게 차근차근 잘 가르쳐 주는 아이 또한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그렇게 서로 도와가며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고맙고 행복하답니다.

오늘 운동장에서 마주친 수미에게 굳이 말을 건 것은 수업시간에 잠을 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려던 것도 있지만 아이의 노력을 알고 있다고, 애써 주는 것이 고맙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위험한 마음’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수업 시간 내내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 집중하다가 잠시 다른 생각도 하고 딴 짓도 하다가 다시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하는 거지 않느냐고.

전 그 말에 참 공감을 했었어요.^^ 그리고 더 많은 집중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인 저의 몫이 크다는 것도요.


마지막으로 책 이야기 좀 할게요.

매주 금요일은 정빈이와 영화 보는 날인 거 아시죠? 지난 금요일에 정빈이와 함께 본 영화는 빨강머리 앤‘이었어요. 텔레비전 시리즈로 나온 것으로 총 6장의 DVD로 되어 있는 것이요. 정빈이는 3편 정도까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빈이는 너무 보고 싶어 금요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오늘 2번째 DVD를 보았답니다.^^ 아마 이번 주 안에 3장 모두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나머지는 제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물론 저는 6편까지 다 보았지만 다시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특히 앤의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교사의 입장에서 본 빨강어리 앤은 참 특별해요. 특히 스테이시 선생님과의 장면과 킹스필드 학교에서의 첫 수업 장면은 몇 번이나 되돌려 보았고요. 영화도 좋지만 10권으로 완역이 된 빨강머리 앤을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어요. 영화를 보고 있는 저를 보고 남편이 그러더군요.

“빨강머리 앤은 애들 보는 거 아냐? 정빈이가 보기에도 좀 수준이 낮을 것 같은데 아줌마가 넋을 빼고 보고 있냐?”

남편처럼 빨강머리 앤이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거예요. 절대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닌 빨강머리 앤을 꼭 한 번 읽어 보십사 권합니다.

그리고 성장소설이라 이름 붙여진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도 저는 부모님들이 꼭 읽어 보셨으면 해요. 하루 6시간의 수업과 3시간의 보충, 그리고 야자와 학원으로 십대를 거의 보내고 있는 지금의 아이들에게 소설 속의 십대의 이야기는 너무나 먼 별나라의 이야기처럼 드리지 않을까, 과연 아이들이 이 글을 보고 공감을 할 수 있을까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문학과 철학을 이야기 하는 십대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색하며 십대를 살아왔다 이야기 하는, 그리고 소설 속의 주인공이 살던 시절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절을 살아 온 저에게도 많은 부분이 생경하게 느껴지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10대와 20대 초반을 위한 성장소설이라기 보다는 40대, 저희 세대를 위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부모님들이 한 번 읽어 보십사 권합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부분 그려지고 있지만 않지만 주인공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시절과는 다르겠지만 나름 전쟁을 치르듯 살아가고 있을 텐데 우린 그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그런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