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시험 공부는 못해는 놀 수는 있던 걸요.
어린이날 아침입니다.
저희 집의 가장 어린이인 정빈이는 아직 한밤중입니다. 만화를 그리다가 새벽에서야 잠이 든 정빈이는 아마도 10시는 넘어야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주 토요일부터 학교 재량휴업일이었던 어제와 어린이날 까지 지금은 마음 껏 즐기는 시간이라며 신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즐기고 있는 중이거든요. 새벽까지 시험 공부는 못해도 놀 수는 있더라는 귀여운 아이입니다. 연휴 동안 새벽에 잠든 날이 두번째거든요.^^ 정빈이의 작품입니다.
한 때 꿈이었던 만화지만 지금의 정빈이에게는 취미생활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만화를 잘 그린다는 소문이 선배들에게까지 났고, 학교 만화부 동아리 선배들이 직접 찾아와 만화부에 들어 올 것을 권유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빈이의 대답은 이랬다고 합니다.
“그저 좋아서 그리는 것 뿐이에요. 동아리 활동까지 할 생각은 없어요.”
사실 중학교에 들어간 직후에는 만화부 동아리에 들 것인가를 두고 많이 고민했었거든요. 그리고 스스로 내린 결론은 그냥 가끔 혼자서 그리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지난 번 글 <마음 급한....> 이후 정빈이의 진로 선택에 어떤 도움을 줄까 생각하다가 함께 읽은 책이 3권이었습니다. 『꿈을 찾아주는 내비게이터』, 『14살, 그 때 꿈이 나를 움직였다』, 『1학년 1반 34번』.
‘꿈을 찾아주는 내비게이터’는 스스로를 조금 더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선택했던 것이고 ‘14살, 그 때 꿈이 나를 움직였다’는 아주 우연하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불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꿈을 가지게 되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너무 조급하지 않게 진로를 탐색하였으면, 그리고 저자처럼 열정을 다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인생에서 큰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또한 꿈은 꾸기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한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ㅎㅎㅎ 제가 한 권의 책으로 욕심을 낸 것 같죠? 결국 책을 읽은 정빈이가 담아갈 몫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1학년 1반 34번’은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진지한 생각을 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1학년 3반 24번이 된 정빈이와 같이 읽어 보았습니다.
학교를 무단결석하는 아이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고 쓰게 되었다는 책,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이야기라는 책 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아주 궁금했었어요.
힘들고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전개되고 마지막 책 속에서 아이가 마음속으로 속삭입니다.
“난 아직 잘 모르겠어. 내가 어린지 아리지 않은 지”
“그럼 힌트를 줄게.
어리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일에
다른 누구를 탓하는 거야.
어리지 않다는 것은 자신의 일에
다른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 것이지.
이제 확실히 대답할 수 있겠어?“
“그렇다면 대답할 수 있어.
나는 이제 어리지 않아.
나는 이제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니까.
전에는 모든 것을 다 어른들 탓으로 돌렸어.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
부모님 탓도 선생님 탓도
학교 탓도 하지 않으니까.“
“(중략)
네가 어른들에게 자유를 구속당해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투덜대는 동안도
너는 매일매일 자라고 성장했던 거란다.
이제 너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아.
그러니 누구 때문에 안되고
무엇 때문에 못한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단다.
이제 누구 탓도 안 돼.
모든 것은 34번 너의 책임이란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다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것은
아이가 인생에서
기쁨만 있다거나 혹은 슬픔만 있다거나
행복만 있다거나 혹은 불행만 있다거나
자유만 있다거나 혹은 구속만 있다거나
하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한쪽 도랑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어른들은 누구든 바로 손을 내밀어
아이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언제든지 그 준비가 된 사람이
바로 완전한 어른, 진짜 어른이다.
나도 이제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책을 덮지 못 한 채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는 과연 진짜 어른일까?’
그리고 1차 지필을 친 정빈이와 함께 찾은 도서관에서 정빈이가 빌려 온 책들입니다.
『실내 공간 디자인 연출』, 『푸드스타일링의 이론과 실제』, 『세상은 놀라운 미술선생님』, 『국어시간에 소설 읽기』, 『봄봄』
진로 탐색중인 정빈이는 요즘 건축과 실내 디자인, 요리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빈이가 찾고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특히 건축에 관한 책은 정빈이가 읽을 만한 것을 끝내 찾지 못했고, 요리도 거의 대부분 요리법에 관한 책이라 겨우(?) 읽고 싶은 것을 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도서관에서도 찾아보고 서점에도 같이 가보아야 하겠어요.^^
한 때 정빈이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멋진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였어요.
“멋진 만화작품을 그리기 위해서는 세상 곳곳을 여행해야 하는데 영어 한 마디 못해서 으흠, 으흠하면서 다닐 수 없잖아요.”
그래서 영어를 하는 것이 신나고 즐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또 다른 꿈을 찾아 가고 있는 14살의 아이.
그 꿈을 찾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정빈이에게는 미래를 위한 준비의 시간만이 아닌,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책 속의 ‘진짜 어른’으로서 아이의 삶에 멘토와 같은 존재가 되어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어 더 씁니다.^^)
정빈이는 오늘 평일인데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밤 11시 30분에요. KBS에서 하는 특집 2부작 읽기 혁명중 1부가 5일 밤에 방송이 되었거든요.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저희라 그런 프로가 방송되는 줄 몰랐는데 어젯밤에 예슬이가 제게 그러더군요.
"오늘 밤 11시에 책읽기에 관한 특집을 한대요. 정빈이 꼭 보게 하세요.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뇌가 어떻게 되는 지 한 번 보여줘야해요."
중간고사 끝나고 지난 주말에 집에 와서 월요일 수업이 없어 어린이날 연휴까지 집에서 지내고 있는 예슬이의 눈에는 정빈이가 조금 더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나 봅니다. 집에 오면서도 대학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가져 와 틈틈히 책을 읽는 예슬이는 며칠 간 정빈이와 지내면서 동생의 책읽기가 마음에 덜 찬 모양이에요.^^
내일 학교에 가야하는데 그렇게 늦게 텔레비전을 꼭 봐야 하냐던 정빈이. 그렇지만 언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11시 반까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고 저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는 도중 4살 아이가 책을 아주 잘 읽는데 몇 가지 검사 결과 부모가 아이가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 아이가 부모에게 예쁘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대목에서 정빈이와 저의 대화가 깊어(?)졌습니다.
정빈이가 그런 부분이 있거든요. 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빈이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가식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요. 저도 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데 마침 텔레비전이 저희 모녀의 대화의 물고를 틔워준 셈이 되었지요.
방송을 놓칠까 잠시 이야기를 하다 미뤄어 두었는데 내일, 오늘이 되었네요. 2부 방송을 다 보고 난 뒤 조만간 그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오늘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돌아와 낮잠을 자두어야 겠다는 아이.
어쩌면 언니의 텔레비전 시청 권유가, 책읽기에 관한 것이라 자신의 책읽기가 부족하여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 정빈이에게는 약간은 부담이 되었을 거예요. 그래도 그 충고를 받아들이고 봐 준 정빈이가 기특하기도 하답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도 조금씩 자라고 있음일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