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고마움, 어떻게 풀어내며 살죠?
참으로 숨찬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너무 오래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다들 건강하시죠?
월요일 퇴근 후에 저녁을 먹고 출발하여 1박 2일로 울진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워낙 먼 곳이라 간 김에 학부모님과 교장선생님들, 울진중학교 학생들, 그리고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들, 이렇게 3번의 강의를 하루에 하고 왔답니다.
워낙 바쁘다 보니 정빈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 부모 동행학습 신청을 하여 정빈이와 같이 다녀왔어요. 오고 가는 시간밖에 같이 할 수 없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만의 여행(?)이라 저도 정빈이도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수업은 미리 바꾸어 다 하고 갔지만 할 학교를 비웠더니 기다리고 있는 일이 산더미더군요.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말을 실감하는 일과를 마치고 병원으로 가서 링거 맞고(일주일에 두 번씩 4주째 링거를 맞으며 다니고 있는 중이랍니다.ㅜㅜ) 주문해 둔 구두를 찾아 집으로 오니 7시가 다 되었습니다. 피로로 인한 심각한 알레르기 현상 때문에 치료해가며 다니고 있거든요. 그리고 워낙 많이 다니고 서 있는데다가 제가 발이 255, 엄청 큰 발이다 보니 신발에 조금(?) 목숨을 건답니다. 발이 편하지 않은 건 정말 힘들거든요.
집으로 와서 옷만 갈아입고 저녁도 먹지 못하고 대구 근교에 있는 작은 형님댁으로 달려갔습니다. 올해는 저희 김장을 작은 형님이 해주시기로 했거든요. 배추 씻고 있다고 내일 버무릴거라며 김치 통 가져오라는 연락이 와서 얼른 달려갔지요. 제가 이렇습니다. 이렇게 주변에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살고 있답니다. 욕심은 많아 김치 통을 4개나 들고 달려갔답니다. 전원주택 마당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절인 배추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배추 씻느라 형님 허리가 남아나질 않았겠다 싶은 것이 어찌나 죄송하던지요. 죄송한 마음은 마음이고 배가 너무 고파 밥까지 달라고 해서 얻어 먹었지 뭡니까. 배추가 많으니 양념도 당연히 많이 준비해야 할 테고.... 그 일이라도 도와 드려야겠다 싶어 국자 들고 나름 형님 옆에서 보조역할을 충실히 하려 애써보았습니다. 저희 아주버님이 어찌나 자상하신지 생강 다 까서 찧어주시고 양념 준비하느라 어질러진 거실을 싹싹싹 빗질도 하시고 걸레질도 하시고.
“아주버님, 진짜 너무 멋지세요. 너무 너무 자상하세요.”
익히 알고 있는 것이지만 새삼 감탄을 했답니다.
“형니임~~~ 저희는요, 제일 안 매운 양념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양념도 조금만 발라주시고요.”
제 친구가 이러는 저를 봤다면 또 한 소리, 아닌 열소리는 백소리는 했을 겁니다. 제가 형님께 김장 부탁드렸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염치없는 부탁을 할 수 있느냐고, 싸가지 중에 최고라고 어찌나 뭐라 하던지요. 그 친구 말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거 저도 안답니다. 그래도 상황이 어쩔 수가 없는 걸 어떡하겠어요. 저희 형님은 걱정까지 하시더군요.
“맛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고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다 된 시간이네요. 내일은 아이들 시험이라 오전에 시험 감독 1, 2교시 하고 12시 30분차 타고 울산교육청으로 강의를 가야해서 그 준비도 해야 해요. 늘 하는 강의인데 뭘 또 준비하느냐 하시겠지만 강의 대상과 강의 시간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늘 준비를 해야 한답니다.
다음 주는 3군데 강의가 있고 그 중 하나는 제주까지 가야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교무실 선생님들께도 너무 죄송하답니다. 될 수 있으면 시간표 바꾸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서 오후 수업이 없는 목요일만 강의를 가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안 될 때가 있어요.
특히 지난 4일 전국 생활지도 담당 장학관과 장학사 연찬회에서 강의를 한 후 많은 교육청에서 갑자기 강의 부탁을 하는 바람에, 어느 곳은 가고 어느 곳은 거절하고 할 수가 없는 난처한 입장이 되었지 뭡니까. 그러다 보니 이번 주와 다음 주, 그 다음 주까지는 장거리 강의가 많아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다른 선생님들께도 죄송하게 되었답니다. 물론 수업이야 다 하고 다니지만 시간표를 바꾸어야 하니까요. 다를 괜찮다고 하시기는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일 강의할 내용을 큰 소리로 연습을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새삼 제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거요. 제일 고마운 것은 저희 학교 아이들이랍니다. 늘 참으로 열심히 해주는 고맙고 예쁜 아이들이에요. 그 아이들과의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저를 응원해주는 남편과 예슬이와 정빈이. 특히 정빈이는 너무 바쁜 엄마 때문에 서운한 것도 많을 텐데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도리어 저를 걱정해주고 챙겨준답니다.
그리고 강의 요청 공문이 올 때마다 흔쾌히 다녀오라 허락해주시는 학교 관리자들도 너무 고맙고 저 때문에 시간표가 바뀌는 불편을 감수해주시는 많은 선생님들도 너무 감사하고요.
그리고 먼 길 달려가 10분이라도 더 하려고 쉬는 시간도 없이 2시간 3시간 연강으로 달려버리는 저의 욕심을 이해해주시고 긴 시간 참아주시고 열심히 들어주시는 많은 분들도 너무 고맙고요.
제가 요즘 다니고 있는 병원에 가면 꼭 보는 두 사람이 있어요. 그 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제자와 그 병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약국 약사인 제자. 정말 대단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간호사인 수정인이는 경상여중 시절부터 저를 너무 좋아해준 그래서 제게 편지도 참 많이 써 준 아이였어요. 고등학교에서도 저와 같이 시간을 보냈었고요. 그 아이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살았었는데....
그리고 약사인 정민이는 19년 전 경일여고에서 저와 같이 공부했던 아이, 이제는 아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그 말이 제일 정겹네요.ㅎㅎㅎ
그 때의 과학 수업으로 인해 이과를 가고 약대를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오늘 그 아이에게 『십대, 지금 이 순간도 삶이다』를 선물하면서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변하려 노력한 선생님의 모습을 보아주었으면 한다고.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착한 선생님이 되려고 애를 많이 쓰면서 왔다고, 그래서 조금은 진짜 착해졌다고 하니 쿡쿡, 웃더군요.
이렇게 감사한 것이 많은 저인데, 받는 것이 너무 많은 저인데... 이거 다 어떻게 풀어내며 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