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기 싫어요

착한재벌샘정 2008. 10. 28. 11:46

 

주말에 집에 온 예슬이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토요일 아침 외출을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1203호 아저씨와 마주쳤습니다. 저희는 1105호 살고 있고 층층이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는 아파트라 엘리베이터를 탈 때 두 층의 가운데에 있는 복도에서 함께 기다릴 때가 많아요. 그렇다보니 자주 마주치고, 가끔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눠 먹는 이웃이지요. 제가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고 그 분이

“어디 놀러 가시나 봐요?” 하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지요. 그런데 제 곁에 서 있던 예슬이는 고개를 까딱하지 않고 서 있는 겁니다.

“슬아, 인사 드려.”라는 말을 하고서야 겨우 마지못한 동작으로(제게는 그렇게 느껴져 얼마나 당혹스럽던지요.) 인사를 하더군요.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고 그 분은 예슬이에게

“주말이라고 집에 온 모양이네?”

“중간고사는 쳤지?”

“대학생활은 재미있니? 곧 또 기말을 치겠구나?”

등등의 이야기를 걸어오셨고 예슬이도 머쓱해하면서도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5일장을 다녀와서 낮잠 한숨씩 자고 마침 똑 떨어진 쌀을 사기 위해 남편과 저, 예슬이가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앞에는 305호 부부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 있었어요. 남편과 저는 거의 동시에 그분들께 인사를 했고 그분들도 어딜 가느냐, 예슬이 왔네, 라며 인사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침과 똑같이 뻣뻣하게 서 있는 예슬이.

“슬아, 인사 드려야지.” 라는 말이 남편과 저의 입에서 동시에 나왔고 당황한 눈빛으로 괜찮다는 말씀과 다녀오라는 말을 하던 부부.

 

차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너, 아침에도 그렇고 왜 인사를 안 해?”

그런데 아이의 말이 너무 뜻밖이었어요. 그리고 그 단호한 말투.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기 싫어요.”

순간 어찌나 놀라고 당황스럽던지요. 남편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남편의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야. 늘 엘리베이터 타고 오르내리면서 보는 사람들인데?”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기세를 꺾지 않고 말하더군요.

“그럼 기숙사 엘리베이터 같이 타는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다 인사해요? 아까 만난 그 사람들 엄마나 아버지가 아는 사람들이지 제가 아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순간 말을 나오지 않는 거예요. 남편은 화가 나서

“인사를 하는 것은 기본이야. 그리고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 서로 유대감을 쌓아가는 거고. 너는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저분들은 널 이웃으로 생각하고 집에 왔느냐 묻고 그러시는 거야. 네가 직접 알지 못해도 어른들을 통해 아는 분들께도 당연히 인사를 해야지. 만약 네가 길거리에서 힘든 상황을 맞았다고 하자. 저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야. 저 애,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앤데. 내가 도와줘야지. 꼭 그런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렇게 서로 마주칠 때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웃이 되고 가까워지는 건데 그게 무엇이 그리 어려워?”

“모르는데 인사하는 게”

아이가 이야기를 하려하자 좀처럼 아이에게 고함을 치지 않는 남편이 목소리를 아주 높여

“부모가 이 정도로 이야기를 하면 받아들여. 엄마나 내가 이렇게까지 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만큼의 가치를 가진 일이기 때문이야. 알았어?”

백화점 슈퍼까지 가는 동안(다른 볼일도 있어 좀 먼 곳에 있는 백화점까지 갔었습니다) 차 안은 침묵으로 조용했지만 아이의 어깨를 보니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어요.

 

차에서 내린 아이의 손을 슬며시 끌어 당겨 잡았습니다.

“인사는”

제가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데 남편은 자기 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버럭 성을 내더군요.

“그 이야긴 이제 그만 해.”

“잠깐만요. 이건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당신, 지금 만큼은 가만있어 주셨음 해요. 부탁이에요.”

남편에게 간곡한 눈빛을 보낸 뒤 다시 아이를 향해 돌아서서 아이 손을 잡았습니다.

“알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연다는 거, 그거 결코 쉽지 않아. 어머니도 가끔은 머쓱해지거나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이 많아.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이 세상은 혼자만 살 수는 없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하고만 인사하고 지내도 된다고 생각할 지도 몰라. 그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내어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건 네가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키워가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엄마는 오늘 두 번이나 인사를 하지 않고 서 있는 너를 보면서 많이 당황스러웠어. 지금까지의 너는, 어머니가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늘 인사를 잘 하는 아이였거든.

차를 타고 오면서 곰곰 생각해 봤어. 무엇이 너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더구나. 하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구나, 하는 생각. 아이 때는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자꾸만 따지게 되고 의미를 찾게 되고 그리고 이익을 생각하게 되거든. 어른이 되면 조금 더 넓고 아량이 있어질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로 될 때가 많은 것을 나 또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 그런데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뛰어 넘어 열린 마음으로 가야한다는 거야. 넌 지금 그런 과정에 서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기숙사 생활이, 엄마는 기숙사 생활을 해 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하루에서 수 없이 마주치는 그 많은 아이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할 수 없으니 너도 모르게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어도 무심해지는 습관이 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니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

하지만 슬아, 부탁할게. 아주 아주 간곡하게 말이야. 아버지나 엄마는 네가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을 향해, 세상을 향해 너를 조금 더 열어 놓은 사람. 이건 조금 더 먼저 살아 본 어머니가 경험을 통해서 얻은 거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 친 누군가에게 어른이든 아이든 간에 먼저 안녕하세요, 또는 안녕, 이라고 했을 때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스르르하고 번져나가는 느낌이랄까. 별거 아닌 작은 것이지만 엄마는 그게 참 좋아.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는 네가 먼저 인사를 할 수 있었으면 해. 그 분들은 절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의 이웃이야.

네 친구들을 만났다고 생각해봐. 너는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딸이 아는 사람들이지 나는 직접 모르니 인사는 무슨, 하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면? 그럴 때 어머니가 ‘안녕, 반갑구나’ 인사를 건네는 거, 어떠니? 하면 좋은 게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지 않니? 넌 어쩌면 어머니가 인사를 안 하고 있으면 그러 걸. 안녕이나 반갑다, 라고 한 마디 하시지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게 서 있을 수 있어요, 라고. 먼저 인사하는 모습은 네가 꼭 가졌으면 해. 너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이 되어주기를 말이야.

얼만 전 있었던 끔찍한 사건도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생긴 일일 거야. 자신만의 세상이 갇혀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대. 마음은 내가 먼저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 어머니의 말 마음으로 받아 주었으면 해. ”

제 손에 잡힌 아이의 손이 땀으로 촉촉이 젖어올 만큼 긴 이야기를 했지요. 그만큼 간절했다고 할까요?

 

그 날 밤 컴퓨터 앞에 앉은 아이에게 반지를 물려주면서(반지를 끼고 싶다고 해서 제가 가진 것 중 몇 개를 물려주었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한 번 부탁을 했습니다.

“이 반지는 언젠가는 너에게 물려 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 반지라 꼭 너에게 주는 첫 반지로 이걸 생각하고 있었지.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우리 딸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아까 엄마가 한 말 꼭 가슴에 담아 줘. 따뜻한 사람이 되어줘. 그걸 마음에만 담아 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풀어가는 사람이.... 아버지가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서 놀랐을 거야. 아버지가 표현이 조금 서툴러서 그래. 아버지가 많은 가치를 두는 일이라는 거, 그 일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 지 가늠하기에는 좋았지 뭐, 그지?

그리고 넌 모른다던 305호 범준이 어머니가 너 왔다고 조금 전에 맛있는 과자를 선물로 가져 오셨어. 엄마 책 잘 읽었다며 선물 하나 하고 싶었는데 마침 예슬이가 와 있어 같이 먹으면 좋겠다 싶어 가져 왔다면서 말이야. 그 분은 너를 알고 너를 챙기는 따뜻한 마음도 있으셔. 이게 이웃이야. 네가 그분들께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제가 건네는 반지를 자신의 손가락에 끼우며 ‘네에~~’라고 대답하며 씽긋이 웃던 아이.

조금씩 자신의 마음의 문을 세상을 향해 열어가는 삶을 살아줄 거라 믿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