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남편 체육대회를 위한 '용의주도 미세스 윤'의 준비

착한재벌샘정 2008. 9. 29. 22:44

남편이 지난주에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장 내시경을 한다면서 보호자가 함께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와 같이 가기 위해 오후에 검사 예약을 하는 통에 남편은 배고픈 하루를 보내야 했답니다. 검사실에 들어간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나더군요. 대기실 모니터로 남편의 내시경 화면을 보여주는데 어찌나 마음이 쨘~~하던지....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게 화면을 잘 쳐다볼 수가 없는 거예요. 검사가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나 나오는 남편을 보자 마음 같아서는 와락 안아주고 싶었어요. 물론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고요. 마취 덜 깬 남편이 놀라면 안 되잖아요.^^

종합 검진 받은 것 결과도 함께 보기 위해 의사와 마주 앉은 남편 뒤에 서 있는데..... 남편의 흰머리가 어찌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지.... 왜 그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던지요. 당뇨를 가지고 있는 남편인데 워낙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지라 발병 9년이 되도록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는 남편이에요. 그래도 이번에는 약을 처방 받아 와서 내일 부터는 약을 먹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을 위해 무엇을 해 줄까 생각을 하다가 거리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모 고등학교 동창 가족 체육대회를 한다는 현수막.

‘그래, 저거야.’

 

남편도 10월 12일에 총 동창 가족체육대회가 있거든요. 제가 뭘 결심했을까요?

은희경의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이런 글이 있어요.

‘이따금 교외의 유원지나 유람선 선착장 같은 곳에서 발랄한 차림을 한 중년 여자와 마주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지나치게 짧은 치마는 오히려 서글프도록 나이를 강조한다는 것을 느낀다. 울퉁불퉁한 허연 허벅지는 퇴기의 추한 욕망 같아서 보기가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젊어 보이는 차림과 덜 늙어 보이는 차림은 다르다는 생각을 빈번하게 한다.’

그녀의 또 다른 소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에는 이런 대목이 있어요.

‘여자는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액을 뒤집어쓰면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이십대 후반으로 보인다는 미용사의 호들갑에 따라 웃다가 그녀는 문득 눈가의 주름이 파상형으로 잡힌 채 웃고 있는 자기의 얼굴이 ’젊다‘가 아니라 ’젊어 보인다‘로 표현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젊다.... 젊어 보인다.... 덜 늙어 보인다

누구의 글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글도 있었어요.

‘젊은 여자와 젊어 보이는 여자, 그리고 젊어 보이고 싶어하는 여자’

뭔 이야기를 꺼내려고 이러는지 궁금하시죠? 오십을 바라보는 남편을 따라 남편 동창체육대회를 가기 위해 이런 결심을 한 거죠.

‘젊어보이자!’ㅋㅋㅋ

그래서 저는 ‘용의주도한 미세스 윤’이 되었습니다.  ‘미즈’라는 말 대신 ‘미세스’라는 말을 선택한 것도 이유가 있답니다. 그날 하루만큼은 오롯이 나, 이영미보다는 남편의 아내, 미세스 윤으로 살아보자 결심을 한 거죠.

마흔 중반의 나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 하는 '젊다'는 더 이상 아닌 얼굴을 하고 있지요. 그렇다고 젊어보이고자 한 적도 없었어요. 옷을 입거나 하는 것의 기준은 늘 ‘남에게 보이는 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이었거든요. 그래서 용의주도한 미세스 윤은 그 날 하루만큼은 '젊어 보이는 여자'를 넘어 '젊어 보이고 싶은 여자'가 되기로 했답니다.

 

지금부터 용의주도한 미세스 윤의 계획을 들어보세요.

하나. 남편을 위한다면서 입고 갈 옷이 있어야지, 하는 투정은 절대 금물. 집에 있는 옷으로 소리 없이 준비하기로.^^ 청바지는 스키니 진으로 예슬이 것을 입을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세미부츠컷, 즉 약간 나팔인 청바지가 날씬해 보인다고 하지만 허벅지가 통통한 저에게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좁아지는 스키니가 제일 날씬해 보이거든요. 검은색 면바지가 조금 더 날씬해 보이기는 하겠지만 체육대회라 단체 티셔츠를 입으라고 할 경우에는 그 어떤 색의 티셔츠와도 어울리는 청바지가 가장 무난하다는 생각. 가끔 주는 단체 티가 박스형이기 때문에 바지는 최대한 슬림한 것이 좋다는 경험에서 얻은 결론. 그리고 부츠컷은 운동화에도 안 어울리고 스포티해 보이지 않거든요.

둘. 티셔츠를 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운동장에 도착해 단체 티를 입을 때까지를 위해 선택한 것은 요즘 대세인 체크무늬 남방입니다. 이것 역시 예슬이것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예슬이 입히려고 샀는데 안 입겠다고 해 저에게로 넘어 온 남방입니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로 저보고 자기 옷은 사지 마라네요. 자기가 알아서 사 입는다고.ㅎㅎ  이 남방은 일단 체크무늬가 예쁘고 길이가 길어 큰 엉덩이를 덮을 수 있으며 허리 라인이 들어가 아주 날씬해 보입니다. 그리고 스판이라 엄청 편하고요. 청바지 역시 스판기 있는 것으로 선택했지요. 나이가 드니 스판기 없는 옷은 불편한 거 있죠.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셋. 일단 옷은 됐고 스키니 진이 폼이 나려면 힐을 신어야 하겠지만 운동장 잔디도 생각하고 개념 없는 마누라라는 소리 안 듣기 위해서 운동화는 필수. 

넷. 가방은 생략. 짐 챙겨가야 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가방은 생략하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 훨씬 깔끔해 보일 것 같아서요. 립스틱 같은 색소 화장은 전혀 안하니 화장품을 챙겨가야 할 필요도 없고 돈이 필요한 장소도 아니니 가방은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요. 두 손도 자유롭고요. 운동 신경이 워낙 둔한지라 달리기 선수를 할 것은 아니지만 단체 줄 당기기에는 저의 넘치는 기운을 보태야 할 텐데, 그럴 때 가방 어디 둘까 뭐 이런 상황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쿨 해보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차림을 선택했습니다.

 

 

앗, 청바지가 입던 거라 무릎이 꽤 나왔군요. 사진으로 보니 일자같은데 입으면 아주 딱 달라 붙는 스키니입니다. 마네킹이 워낙 약해서, 55도 안되는 것이라 그렇게 보이나 봐요. ㅜㅜㅜ 운동화도 씻어야 할 것 같네요. 이런이런.....

팔이 긴 예슬이를 위해 샀던 남방이라 제게는 소매가 길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소매 부분을 사선으로 접어주는 센스.

 

 

팔이 길어 보이면서도 너무 긴 소매를 둥둥 걷지 않고 폼 나게.

넷. 꼭 챙겨야 하는 것, 선글라스. 개인적으로 선글라스 마니아인데 선글라스는 유행을 타는 것보다는 심플한 것으로. 이번에 선택한 것은 흰색입니다. 차에 있어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ㅜㅜ분명 내릴 때 가져 온 것 같았는데... 이런 걸 보면 용의주도 미세스윤이라고 하기에는 쬐끔 부족합니다요.ㅎㅎ 다시 가지러 가는 것도 엉덩이가 무거워서리..... 잠도 오고....

이 선글라스를 사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답니다. 2년 전 처음 백화점에서 이 선글라스를 보고 한 눈에 반했지만 엄청난 가격에 돌아섰지요. 꼭 있어야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 다음 해 50% 세일가격으로 나온 것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당장 사려고 했는데 지갑에 현금이 없더군요. 제가 특별히 무엇인가를 사겠다 마음먹지 않을 때는 카드를 가지고 나가지 않거든요. 신용카드든 현금카드든. 신용카드로 긁을 수도 없고 현금카드로 통장의 돈을 찾을 수도 없어서 ....그래서 아쉽지만 또 그냥 왔어요.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눈에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 날 카드를 들고 백화점에 갔더니 그 물건은 다 팔리고 없다는 거예요. 세일 물건이라 주문도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저와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돌아서 왔죠. 그리고 올해 우연히 평소 가지 않던 친정 부근의 백화점에 갈 일이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 선글라스 할인 코너가 있었는데 앗, 그 선글라스가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이미 에스컬레이터를 탔던지라 약속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도 잊고 다시 1층으로 내려 가 값을 물어 보았더니 작년 세일 가격에 다시 50%를 한 가격보다 더 싼 균일 9만원이라는 겁니다. 판매원도 2년 이월이라 엄청 싼 가격이고 물건도 하나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그 때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 이게 진짜 이거 값일 거다. 이것도 크게 싼 거 아니지 솔직히.’

그래서 약속 장소에 갔다가 다시 내려왔을 때에도 있으면 사자 마음을 먹었죠. 그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3시간 정도의 수다를 떨고 다시 내려왔는데도 그 물건이 거기 있는 겁니다. 요즘 대세인 오버사이즈가 아니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처음 필이 꽂인 지 2년 만에 제게로 오게 된 선글라스인데 아주 아주 마음에 들어 여름 내내 즐겨 썼는데 이번에도 선택이 된 거지요.

다섯. 체육대회이지만 가방처럼 모자나 양산은 생략. 자외선이 강하겠지만 선크림을 충분히 바르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모자에 거의 목숨(?)을 건다는 건 다들 아시죠?ㅋㅋ 하지만 그 좋아하는 모자를 이번에는 미세윤 컨셉에 맞춰 과감히 생략 하기로 한 거죠. 심플해 보이는데는 선글라스만으로 충분할 것 같아요.  

여섯. 귀걸이는 제가 가장 즐겨하는 악세사리로 절대 뺄 수는 없는 것. 선글라스와 어울리는 것으로 으음~~~ 솔직히 이건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그날 상황에 따라 전체적인 모습에 맞춰서 가장 젊어 보이는 것으로 선택을 하려고요. 목적에 딱 맞는 것으로.

 

용의주도한 미세스 윤이 여기서 끝은 아니지요. 조금이라도 더 젊어 보이기 위해서......

그래서!!!!!  맛사지는 커녕 세수도 자주 하지 않아 남편으로 부터 ‘너 이렇게 게으르고 지저분한 줄 알았으면 장가 안 왔다.’라는 구박을 받는 제가 간만에 이런 모습으로 거실에 앉았더니

 

                             

남편과 정빈이 모두 이러는 겁니다.

“인터뷰 있어요? 방송 있어요?”

제가 가끔, 정말 가끔 하는 마스크 팩은 일단 가격 면에서 싸고(10장에 정가 35.000원인데 인터넷에서 22,300원에 구입) 큰 바위 얼굴인 제게 아주 편리한 아래 위, 두 장으로 분리된 오션 제품입니다. 한장으로 된 건 저 한테 너무 작아요. 제가 예전에 신문에 요리 칼럼 쓸 때 그런 말 한 적있어요. 마스크 팩도 대, 중, 소로 크기를 다양하게 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리고 화장품 회사 홈페이지에 그런 건의를 올린 적도 있는데..... 이 제품은 아래 위 두 장으로 분리되어 있어 얼굴 큰 저에게는 더 없이 편리한 제품이랍니다. 한 장으로 된 건 진짜 너무 작아요. 화장품 광고하는 거 같네요.ㅎㅎ  

어쨌든 팩이 좋긴 좋은가 봐요. 팩을 떼 낸 뒤 이렇게 반들반들 해 보이는 걸 보면요.

 


 

남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습니다.

“자기야, 어때? 팽팽해진 거 같아요?”

한참 꼼꼼히 보던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더군요.

“응. 아주 많이.”

조금 더 들이밀며

“정말요? 안 할 때하고 차이가 나요?”

고개를 뒤로 빼면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다시 꼼꼼 살피던 남편

“그렇다니까.”

갑자기 왜 이러는 지 알 수가 없다는 남편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다른 건 해줄 게 없고 체육대회 가서 마누라 젊어 보이네 소리는 듣게 해줄게. 당신은 마누라가 당신 좋아한다고, 그것도 엄청 좋아한다고 아주 뿌듯해 한다지요? 맞아요. 나는 당신 진짜 무지무지 많이 좋아하고 사랑해요. 그런 당신 요즘 축 쳐진 어깨 조금이라도 올라가게 해주고 싶어요. 누구처럼 8살 어린 마누라도 아니고 또 누구처럼 미스코리아 출신 마누라도 아니고 또 누구처럼 쭉쭉빵빵 S라인 자랑하는 마누라는 아니지만 남편 사랑하는 데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는 마누라라는 거 알죠? 내가 젊어 보이는 비법을 알고 있거든요. 남편을 향해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마누라만큼, 남편을 보며 설레는 얼굴을 하는 마누라만큼 그리고 남편을 향해 오드리 헵번을 능가하는 환한 미소를 보내는 마누라만큼 젊어 보이는 마누라는 없을 걸요. 난 그건 자신 있어요. 일부러 하려고 하지 않아도 늘 그러니까. 거기에 맛사지 팩에 스키니 청바지까지 준비했으니.... 내가 당신 아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이렇게 고민한 적은 없었을 거예요. 아, 또 하나 있어요. 아주 상냥하고 다소곳한 말투. 내가 이번에 미세스 윤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겠어. 기대해요, 여보.’

요즘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오십을 바라보는 회사원인 남편은 많이 힘이 드는 가 봅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체육대회 하루는 미세스 윤으로 살아주고 싶어요. 남편 옆에서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고 그를 바라보는 그 남자의 아내로. 

이 정도면 용의주도 미세스 윤,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