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친정아버지의 생신과 고3수험생 딸

착한재벌샘정 2007. 9. 16. 20:07

태풍의 영향으로 대구에는 어제부터 비가 오고 있습니다. 모든 곳이 큰 피해없이 잘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제는 친정아버지의 생신이었습니다. 솔직히 생신인 것을 깜빡하고 있었어요. 중요한 날들을 달력에 표시를 해두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휴대전화의 일정표에 의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휴대전화를 바꾸고는 일정들을 아직 입력하지 못해 정말 큰 불효를 할 뻔했습니다.

저희 학교는 토요일이 다른 날과는 다른 일정으로 하루 일과가 돌아가다 보니 유난히 부재중 전화가 많은 날이기도 합니다. 어제도 수업을 갔다 오니 지역번호가 경남인 낯선 번호가 몇 번이나 부재 중으로 남아 있더군요. 전화를 거니 김해에 있는 모 고등학교라는데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를 알 수 없더군요. 할 수 없이 이런 사람인데 혹 전화를 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식으로는 곤란하다고 하고. 혹시 학생인권 정핵연구 학교냐고, 혹여 그쪽 관련 강의로 인한 것 일 수 있으니 담당 부장님께 메모를 남겨 달라고 부탁하고는 할 수 없이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미안합니다. 선생님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수업을 들어 왔습니다. 출장 관계로 혹여 통화를 해야 할 일이 생길지 몰라서 그러니 여러분이 이해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수업 중에 전화가 오면 잠시 수업을 중단하고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으니 그것도 양해를 해주기 바랍니다. 정말 미안해요, 여러분.”

특별한 경우 예외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가는 일이 없는데 어제는 할 수 없이 토요일 4교시 수업에는 가지고 들어갔고, 2학년 10반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이해를 구한 뒤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지 뭡니까. 수업을 거의 다 마쳐가는데 전화가 울리는데 ‘아버지 사랑 합니다’가 뜨는 겁니다. 제가 친정 부모님의 휴대전화 번호를 각각 ‘아버지 사랑 합니다’, ‘어머니 사랑 합니다’로  저장해 두었거든요. 전화 걸 때마다 뜨는 그 글에 조금이라도 제 마음을 더 담을 수 있을까 해서요.

참 난감하더군요. 아직 수업 중인데, 몇 분남아 있는 동안 학생들은 그 날 수업한 것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런데 문제는 전화가 끊기질 않고 계속 울려대는 겁니다. 갑자기 덜컥 걱정이 되는 겁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지난 번처럼 집에 못 들어가고 계시는 걸까? 어디 다치셨나?’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인지라 한 번 떠오른 불길한 생각은 멈추지를 않고 계속 커져만 가는 겁니다. 할 수 없이 학생들에게 미안하니 잠시 전화를 좀 받겠다고 하고(출장으로 인한 통화는 그 전에 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으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전해오더군요.

“이 선생이가? 내다. 아버지다. 니가 전화했나?”

“아니요. 제가 안했는데 왜 그러세요? 전화가 와서 받으니까 끊겨서 닌 줄 알고. 내 생일이라고 니가 전화한 줄 알고.”

그 순간 가슴이.... 정말 찌르르 하는 것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겁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거짓말을... 너무 죄송했지만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안 그래도 전화도 드리고 저녁에 아이들이랑 다 같이 가려고 했었어요.”

“그래? 언제 오노?”

“이따가 퇴근해서.... 아버지 제가 지금 수업 중이에요.”

“수업? 미안타. 내가 그것도 모르고 끊는다. 이따 온나.”

전화를 끊고 들어 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안해요. 여러분. 선생님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신 분이라.... 혹시 무슨 일이 있어 전화를 한 건지도 몰라서..... 이런 일은 선생님도 처음이라 참 당황스럽네요.”

그렇게 말하는데 눈에는 눈물이 고여 오고 목소리는 잠겨와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학생들도 그런 저를 보며 많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습니다. 곧 마침 종이 쳤고 서울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 혹시 아버지께 전화 드렸었니?”

“응. 생신이라고...”

“내가 전화 드린 줄 알고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말이야. 수업 중이었는데 아버지 전화가 와서 얼마나 놀랬는지. 지난번에는 어머니 절에 가셨을 때 새벽 운동 가셨다가 열쇠를 안 가지고 가셔서.... 집 비밀번호를 몰라 집에 못 들어가셔서.... 그 때 하도 놀래서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깜짝 놀랐어.”

“미안. 내가 아버지 걸음을 잘 못 걸으시는 걸 생각 못하고.... 생신이라고 전화 드렸는데 어머니 계신 줄 알고 집으로 했더니 안 받으시기에 다시 아버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도 안 받으시더라고.”

“집 전화 울리니까 받으러 나오시는 동안 끊겨 버리고... 겨우 거실까지 나왔는데 다시 방에 있는 휴대폰이 울리고.... 그래 다시 방으로 들어가니 휴대전화는 끊기고. 그러셨던 모양이야.”

“그러게 말이야. 왜 이렇게 생각이 짧은 건지.”

“전화 울리니 당연히 내 전화인 줄 아셨던 모양이야.”

 

아마도 제 전화를 많이 기다리셨던 모양이었습니다. 휴대폰에 동생의 전화번호가 남아 있었을 텐데도 저에게 전화를 하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맏딸이라고 어릴 때 부터 유난히 저를 참 많이 예뻐해 주시는 아버지거든요. 그런 아버지의 생신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딸이니.....

제가 참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소풍에 따라 오셨던 아버지. 30년도 넘은 사진이지만 사진 속의 아버지는 지금 거리를 다니셔도 멋져 보일 거 같습니다. 이 사진이 이렇게 구겨진 이유는 아버지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끝끝내 찢지도 버리지도 못했던 사진. 그리고 이제는 참으로 소중한 사진이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세상에서 제일 고마워하는 것 중 하나가 텔레비전입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에게 가장 큰 효도를 하는 것이 텔레비전이거든요. 노래를 아주 잘하시는 아버지는 케이블 티비의 성인가요 채널을 즐겨 보신답니다. 몸이 불편해지기 전에는 진짜 노래를 잘 하셨어요. 장동건 저리 가라할 정도의 잘 생긴 얼굴에 구성진 노래 한 자락이면 정말 온 동네가 난리였다니까요. 외할머니 환갑잔치 때 저를 옆에 세워두고 부르셨던 노래를 근 4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을 정도로 아버지의 노래 부르시는 모습은 너무 멋졌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요 프로를 가장 열심히 보신다고 하네요. 어느 자식이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 드리겠습니까? 저희 5남매 중 대구에 살고 있는 자식이 저 혼자이고 같은 대구에 살고 있는 저도 마음만큼 자주 찾아뵙지 못하니 마음대로 가시고 싶은 곳을 다니시지 못하고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집안에서만 지내시는 아버지께 가장 큰 효도를 하는 것은 자식들이 아니라 텔레비전인거죠.

한 때 방송활동을 할 때는 아버지의 가장 큰 기쁨이 제가 나오는 프로를 보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인 방송을 보시면 일주일 내내 그렇게 할 말이 많으셨다고. 그날 입은 옷은 우리 아이에게 안 어울린다, 안경을 안 끼는 게 더 이쁜데 왜 또 안경을 끼고 나왔는지, 굵은 팔뚝이 나오게 카메라를 잡은 것이 아주 불만이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딸은 역시 똑똑하고 말을 참 잘한다, 옆에 앉은 남자 얼굴이 너무 작아서 우리 딸 얼굴이 더 크게 보인다, 이번에는 말을 하면서 왜 그렇게 손을 많이 흔들었는지 이야기를 좀 해줘야 겠다 등등. 일주일 내내 그런 이야기들을 하셔서 어머니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라고 하소연을 하시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쁨을 드릴 수가 없어 많이 아쉽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고맙다는 것입니다. 몸이 불편해지시고도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애쓰시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 감사하고 많이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열심이신 모습이 자식들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당신은 아실런지....

  

토요일에도 오후 5시가 되어야 마치는 예슬이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문자를 넣으려는 순간 갈등이 되는 겁니다. 처음 해보는 갈등이라 저 스스로도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오늘 할아버지 생신이라서 상인동 가서 저녁 먹을 거야.’

보통 때 같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그 말 속에는 당연히 예슬이도 같이 가야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어제는 갑자기 뒤에 무슨 말인가를 붙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같이 가자? 아니, 같이 갈 거지? 아니 같이 갈래? 이것도 그렇고.... 참나. 이거 뭐라고 해야 하나...’

저도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일로 갈등을 하게 될 줄은.... 고3 수험생이의 엄마라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 동안 갈등을 하다가 결국 붙인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넌 어쩔 거니?’

수시 원서를 내고 수능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라 예슬이가 많이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한 시간이라도 아까워 동동거리는 것을 알기에 눈치가 보이는 겁니다. 정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답니다.

예슬이는 당연히 가야한다는 듯이 평소와 달리 그렇게 묻는 제가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습니다. 남편도 예슬이는 어쩔 거냐고 묻다가 당연히 가야지요, 하는 말에 물은 자신이 조금 머쓱한 듯 하고요.

그렇게 저희 네 식구는 예슬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예슬이가 집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많이 놀라셨습니다.

“예슬이도 왔나?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다른 때는 몰라도 올해는 안와도 되는데.”

“당연히 와야죠. 할아버지 생신이신데.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슬이 왔나. 고맙다. 봐라 슬이 온다 안 카드나.”

“할머니는 슬이 못 올 줄 알고 상에 슬이 수저는 안 놓았더니 할아버지가 자꾸 슬이 수저도 놓으라는 거야. 할아버지가 하도 그러시니까 혹시 싶어서.... 혹시라도 와서 숟가락 없어 섭섭해 할까 봐 놨더니 진짜 왔네. 고맙다 슬이야. 할아버지 예상이 맞았네. 슬이 올 거라고 하시더니.”

정빈이는 할아버지 뺨에 뽀뽀를 쪽쪽 해드렸고 흐뭇하게 얼굴을 대고 계시는 아버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갔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준비하신 많은 음식들로 차려진 상은 반찬 그릇을 놓을 자리가 부족한 듯했습니다.

“내가 악처로 보이는 지 얘들이 전화해서는 다 첫 마디가 미역국은 끓였냐고 묻더라. 내가 남편 생일에 미역국도 안 끓여 주는 악처로 보이나 정말.”

많은 음식 혼자 준비하시느라 힘들었는지. 아닌, 당신이 준비한 그 많은 음식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인지 어머니는 조금 응석(?)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셨고 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약간 그런 기질이 있으시죠. 멀리서 다들 걱정 되서 그런 거 아닐까요? 곰국 한 솥 끓여 놓은 건 아닌 지.”

“뭐라 카노 야가? 내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 생신에 내 손으로 이렇게 안 차린 적 없다.”

불끈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참으로 정겹고 귀엽기까지 했습니다.

“너거 아버지는 참 복도 많은 사람인기라. 어떻게 자식 다섯이 모두 아버지라카믄 꺼뻑 넘어가는 지.  이렇게 극진하기도 힘들다, 아나? 솔직히 너거 아버지 너거 키우는데 한게 뭐가 있다꼬? 그런데도 이런 호사를 하니. 복도 복도 이렇게 많기도 힘든기라.”

살가운 남편은 젓가락질이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생선살을 발라 아버지 숟가락 위에 일일이 얹어 드리고 아버지는 그것이 조금 늦을라치면 숟가락을 밥 위에 놓고 터억하니 기다리시고. 예슬이와 정빈이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할머니의 미역국에 밥숟가락이 바쁘기만 하고. 아버지의 생신 저녁상은 부모님과 저희 네 식구의 도란도란 정겨운 이야기와 함께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설거지를 하려는 저에게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얼른 가거라. 얼른. 예슬이 공부해야지. 이렇게 와 준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데.... 설거지는 내가 하면 되니까 얼른 슬이 데리고 가거라. 미역국 줄까? 아이들 미역국 좋아하잖아.”

“설거지는 하고 가도 되요. 미역국은 많이 주시고요. 아이들이 미역국을 끓여 놓으면 꼭 한 마디를 하거든요. 미역국은 할머니께 진짜 맛있는데, 하고 말이에요.”

“참말이가? 슬이도 정빈이도 할머니께 니네 엄마 끓인 거 보다 맛있나?”

저희 두 아이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더군요. ‘네’하고.

어머니는 음식 정리하시고 저는 그릇들을 씻고 예슬이는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며 저와 어머니를 도왔습니다. 공부하는 데 힘든데 하지 말라고 해도 예슬이는 그저 씽긋이 웃으면서 묵묵히 열심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려 일어서다가 제가 정빈이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건강하시라고 큰 절 한 번 해.”

쑥스러운 듯 잠시 머뭇거리는 정빈이에게

“너 가끔 밤에 자러 들어 갈 때 나한테 하잖아. 고맙습니다, 하면서. 그런 절 말이야. 할아버지 생신이니까 건강하시라고 정빈이가 큰 절 한 번 드리면 할아버지께서 많이 기뻐하실 거야.”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정빈이라 안 하겠다고 뻗대면 말을 꺼내지 않은 만 못하겠다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긴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이고 해서 정빈이만을 바라보는데 잠시 주변을 주욱 살펴보던 정빈이가  넙죽 큰 절을 하는 겁니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리고 건강하세요.” 하면서요.

제가 정빈이 키우면서 많이 힘들어 한 것 때문에 늘 마음 아파하시는, 그래서 제게 전화를 거시면 늘 잊지 않고 물으시는 말씀이 정빈이는 어떻노, 인 아버지. 이제는 저의 어깨를 넘게 훌쩍 크고 튼튼해진 정빈이의 그런 모습에 아버지는 많이 기쁘신 모양이었습니다.

정빈이의 큰 절로 인해 온 가족이 웃느라 헤어짐의 부산함이 조금 더했던 탓이었을까요? 앞산 순환도로로 막 차를 올리려는 찰라에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겁니다. 아뿔싸! 욕심내서 많이 담아 두었던 미역국을 잊어버리고 왔지 뭡니까? 다시 차를 돌려 아파트 현관에 기다리고 계시는 어머니로부터 미역국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에 앉은 예슬이도 옆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는 정빈이가 너무 예뻐 보이는 거 있죠?

“할아버지가 예슬이 보고 싶으셔서 기다리셨던 모양인데 안 왔으면 많이 서운하실 뻔 했어. 엄마도 고마워. 그런데 솔직히 시간 너무 많이 뺏긴 거 아니니?”

“괜찮아요. 독서실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집에 가서 EBS 강의를 들으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너무 고마워하시니 도리어 죄송하던 걸요. 당연히 가야지요. 그 몇 시간, 다른 시간에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걸요 뭐.”

이렇게 예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예슬이에게 합격이라는 좋은 선물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