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정빈이가 쓴 가을 시 한 편

착한재벌샘정 2004. 11. 14. 20:19

‘빨강머리 앤’에서 어떤 장면을 좋아하세요?

저는 앤이 시 낭송을 하는 모습 상상하는 것을 참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정빈이에게 시를 읽어 달라고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빈이는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거나 몸이 아픈 것 같으면 옆에 붙어 앉아 시를 들려주곤 합니다. 사진 속의 정빈이는 저희 집 부엌에 있는 칠판에 시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엄마를 위해 들려 준 시를 ‘정빈이가 지은 시니?’라고 묻자  조금 자존심이 상했는지 즉흥적으로 시 한 편을 쓰기 시작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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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라는 제목의 시가 완성되었습니다.  

 

가을바람

      - 윤정빈

 

가을바람 

그 주머니에는

아름다운 빛깔이 숨어있고

그 빛깔은

단풍을 만드네

 

가을바람

그 주머니에는

서늘함이 숨어있고

그 서늘함은

친구들을 괴롭히네


꼬마 시인 정빈이는 그동안 많이 아팠었습니다.

친구 말을 빌면 저희 집은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이었습니다. 정빈이가 아프면 저희 집은 정말 말로 표현이 안 되거든요.

가장 미안한 것은 예슬이입니다. 하지만 예슬이는 아픈 동생 때문에 엄마 힘들다고 도리어 저를 위로하곤 합니다. 늘 든든한 친구 같은 예슬이가 고맙기만 하답니다.

아픈 시작은 제가 했었는데 아이가 아프니 엄마는 아플 여유도 없더군요. 이제 컴퓨터 앞에 앉을 정도의 여유는 생긴 걸 보니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는 증거지요.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프지 않을 때 정빈이는 마치 ‘탱탱볼’ 같이 에너지가 넘치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랍니다. 제가 학교 아이들 실험을 위한 예비 실험을 한다고 해도 ‘저도요 저도요’라며 꼭 해 보야 합니다. 온도 감지 실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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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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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이나 걸린 산행이었는데 정빈이는 태어나 두 번 째로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업히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산에 올랐었습니다. 컵라면의 위력이 대단하더군요. 자기는 급식 먹는 시간이 12시 30분인데 그 시간에 맞춰 꼭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하더니 정말 씩씩하게 산에 올랐답니다. 덕분에 제가 투덜거리는 소리 한 번 못하고 무척 힘들었답니다.

 

지난 번 정빈이가 피아노 연습을 아주 열심히 한다고 했었잖아요. 예슬이 방에 있던 피아노를 거실로 옮기고 피아노 뚜껑을 늘 열어 둔 후로 관심을 더 많이 가지더니 아프면서도 피아노만큼은 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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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사들은 피아노 위에 아무것도 얹지 말라고 하는데 정빈이는 이것만은 꼭 얹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며 액자를 얹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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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학교 예술제에서 ‘바른 글씨 쓰기’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위의 칠판의 글씨하고는 많이 다르죠?

요즘 정빈이는 <창밖을 보라> 다음 곡으로 <꼬마 눈사람>을 연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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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빈이가 피아노를 독학을 하자 저희들도 가만있을 수 없어 남편과 저도 시작을 했습니다. 저는 악보 읽으면서 한손으로 치는 정도이고 남편은 음악 시간에 뭘 했는지 ‘도가 어디고?’를 묻는 정도였습니다.

 

예슬이와 정빈이가 저희 부부의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한 장씩 진도가 나갈 때 마다 그 기쁨 이루 말 할 수 없답니다. 그 동안 피아노 썩 잘 치지 못해도 그리 답답한 일 없어 관심이 없었는데 피아노 덕분에 새삼 ‘배우는 기쁨’을 느끼고 있답니다. 남편이 정빈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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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복 차림에 모자를 즐겨 쓰는 남편인데 외출 직전에 잠시 배우고 있는 중이라 마치 ‘현상수배범’ 같이 나왔네요.ㅎㅎ

남편도 피아노 배우는 재미가 무척 좋은 지 아주 연습을 많이 합니다. 이러다 저희들 이웃들에게 시끄럽다고 원망 들을까 걱정입니다.


정빈이가 몸이 좀 회복되자마자 가장 먼저 걱정을 한 것은 ‘독후감 쓰기’였습니다. 제 노트북 앞에 앉아 아주 진지하게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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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에 쓰게 할까를 두고 고민을 했었는데 이 기회에 컴퓨터하고 싶어 하는 갈증(?)도 좀 풀어주고 정보생활 시간에 배운 것들을 써 먹을 기회도 주자는 생각에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도록 했는데 그것도 많이 힘들어합니다. 작가가 쉬운 게 아닌 줄 알았다며 아주 진지한 얼굴도 하고요.

 

아, 왜 독후감을 쓰고 있는지 말씀을 안 드렸네요.

정빈이는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에서 공모하는 독후감 대회에 응모할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가면 독후감 대회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독후감 대회에 응모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니 초등학생이 있다면 한 번 권해보세요. 정빈이는 자신이 즐겨보는 과학 잡지에 그림을 그려서 보내 놓고 책에 실릴까 기대를 하며 12월호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답니다.

정빈이가 독후감 대회에 선택한 책은 <뿌웅 보리방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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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이가 보리밥을 아주 싫어했는데 요즘은 보리밥을 주어도 책을 읽기 전하고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이 책이 영향을 많이 준 모양입니다. 아직은 절대로 보여 줄 수 없다며 원고 쓸 때는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근처에 지나갈라치면 화들짝 놀라며 가리곤 해서 정빈이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 지 몹시 궁금하답니다. 사진도 미리 찍는다고 양해를 구하고 찍었을 정도입니다.

 

요즘은 정빈이 이야기가 대부분이죠? 예슬이가 어엿한 숙녀가 되고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가 줄어드네요.

오늘도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예슬이의 축제 이야기를 할게요.

10월 말에 있었던 학교 축제 준비로 예슬이는 정말 많이 바빴습니다.

‘너희 학교 축제는 너 없이는 안 되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답니다. 학교 선도부장이니 학생회 쪽에서도 일을 해야 하고 동아리 부회장을 맡고 있으니 그 준비도 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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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럼 조금씩 다가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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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슬이 동아리에서 축제 때 한 일은 그림을 그린 뒤 코팅을 해 책갈피나 장식용 걸이를 만들어 판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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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는 것처럼 어찌나 인기가 좋았던 지 시작하자 말자 매진이 되는 제품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매진됐다는 팻말 속의 캐릭터가 눈에 익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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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만들었던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을 하는, 바로 저희 예슬이의 캐릭터입니다.  


그 많은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고 코팅하고…

그런 준비를 하느라 여름부터 정말 많이 바빴던가 봅니다. 그곳에 가서 엄청난 양의 제품(?)을 보니 이해가 가더군요. 동아리 아이들 모두들 정말 솜씨가 좋았습니다. 저도 4개나 사서 선물을 했는데 예쁘다고, 너무 잘 그렸다고 감탄에 입을 다물지 못하더군요.

 

중학교 3학년. 이제 얼마 후에는 고등학생이 되는 예슬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들을 잘 해나가기를 바라고 그 곁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사랑의 마음으로 응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