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부터 두 달만 교회에 다니셨다고요?
정빈이는 여름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선물 받을 수 있는 날’인 듯 하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팽이’를 받고 싶다는 아이. 탑블레이드라는 것을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건만 아이는 새로 나온 팽이에 마음을 빼앗겨 여름부터 팽이와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노래를 불러대고 있다.
“글쎄, 산타할아버지가 올 해 우리 집에 오실지는 모르지. 우리 집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해마다 오지는 않으니까. 너도 알잖아?”
“알아요. 그래도 올지 모르니까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정해둔 것뿐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교회에 나가는 건데. 교회에 다니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꼭 줄 텐데.”
“아닐 걸. 지원이는 교회 다니지만 지원이 집에도 산타할아버지가 매년 오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아, 맞다! 그렇지. 지원이도 산타할아버지가 안 와서 아빠가 강아지 인형 사줬다고 했지. 그래도 교회에 다니면 좀 더 자주 오지 않을까요, 우리 집 보다는?”
올 해 아이의 많은 관심 사 중 하나가 종교였다. 거의 매일 붙어 노는 단짝 친구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갈 것을 권유하면서부터 아이의 갈등은 시작이 되었다.
“교회에 갈려고 하니 할머니가 서운해 할 것 같고, 안 간다고 하려니까 지원이가 섭섭해 할 것 같고. 어쩌면 좋아요 어머니?”
아이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자기를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불심이 두터우신 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특히 병약한 자기를 위해 얼마나 자주 절을 찾고 기도를 열심히 했는 지를 알기에 자기가 할머니가 다니는 절이 아닌 교회에 간다고 하면 많이 서운해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권유에 선뜻 따라 나서지 못하고 갈등을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서운해 하시지 않을 거야. 할머니께서 정빈이를 위해 절에 열심히 다니시고 부처님께 기도를 많이 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빈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거나 하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건 네가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실 거고, 으음…, 할머니는 네가 교회에 나가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실 거야. 왜냐하면 내가 어렸을 때도 할머니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의 선택에 맡겨두셨던 분이니까.”
“어머니도 교회에 가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게 말이지…, 사실 어머니는 어릴 때 교회에 나가기는 했었는데 늘 11월부터 두 달 정도 다니다가 그만 두곤 했었어.”
“11월부터 두 달만 교회에 다니셨다고요? 왜요?‘
“선물 때문에.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선물이라는 것이 아주 귀했었거든. 그런데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가면 선물을 받을 수 있었거든. 그것도 아주 많이.”
“크리스마스는 12월 24일인데 왜 11월부터 나가셨어요?”
“어머니가 욕심이 많아서 그랬지 뭐. 염치는 없으면서 말이지. 선물도 받고 싶었지만 연극이 더 하고 싶었거든. 11월쯤 이면 교회에서 연극 연습을 시작하거든. 그 때 가야 연극에 끼일 수 있었으니까.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교회에 안나가다 연극하고 싶은 마음에 11월이 되면 다시 교회에 나가곤 했었어. 대사 한 마디 없는 지나가는 사람 역이라도 하고 싶었으니까. 구름을 하기도 했었고 한 번은 새끼 양을 하기도 했었어. 비록 예수님이나 마리아 같은 역은 못했었지만 그래도 어찌나 신이 났던 지 연극 연습을 위해 정말 열심히 교회에 갔었다니까.”
“그럼 계속 다니지 그랬어요? 그러면 예수님이나 마리아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어머니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더 이상 연극 연습이 필요 없어지고 나면 교회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일요일에 꼬박꼬박 교회에 갈 수가 없더라는 거지.”
“하느님이 벌주지 않았어요? 자기하고 싶은 것만 하고 그 다음에는 오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처음 교회에 갔을 때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 오고 싶을 때만 와도 된다고. 교회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안 와도 된다고. 그리고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면 된다고. 지금도 그 분 말씀을 가끔 생각하는데 그 말씀이 참으로 옳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해. 네가 이해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종교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영혼이 가장 끌리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 어머니는 비록 1년에 두 달씩이지만 교회에 다니는 것이 좋았어.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당신이 절에 다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씀 대신 여러 곳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택에 의해 지금의 종교를 가지게 된 거야. 그러니 할머니께서 서운해 하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할머니께 물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고.”
아이의 걱정과는 달리 할머니의 흔쾌한 허락이 있자 아이는 부활절 예배에도 참석 하고 여름 성경 학교에도 다니게 되었다.
“오늘은 성경 학교 안 갈래요.”
“오늘이 제일 재미있는 날이라고 하지 않았니? 수영장도 간다면서? 너 수영장 가는 거 무지 좋아하잖아.”
“아니요. 안 갈래요. 수영장은 가고 싶지만 안 갈래요.”
“왜? 친구랑 싸웠니?”
“아니요. 노래 때문에요. 도대체 아는 노래가 있어야 부르지요. 다른 친구들은 다 아는 노래니까 열심히 부르는데 하나도 아는 게 없으니.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면서 자꾸 부르자고 만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잖아. 어머니도 찬송가 무지 많이 알고 있는데 전부 그렇게 따라 부르다 배운 거거든. 모르는 사람들은 어머니가 지금도 교회에 아주 열심히 다니고 있는 줄 알고 있을 정도라니까. 노래 말도 좋고 음도 편안하고.”
“그래도 싫어요. 아마 오늘도 수영장 가서도 노래 할 걸요. 수영 조금 하고 기도 좀 하고. 수영 좀 하고 노래 좀 하고. 아마 그럴걸요.”
여름 성경학교의 마지막 날 결석을 한 뒤로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 아이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선물 때문에 교회에 계속 다녔어야 했던 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다시 다녀 볼까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이제 사춘기에 접어 든 것 같다는 자가 진단을 내린 아이. 갑자기 가슴 한 쪽이 아프다는 둥, 남자아이들이 귀여워 보인다는 둥, 슈퍼마켓에 가면 괜시리 생리대 매장에 가서 나중에 어느 제품을 쓸 것인가를 지금 결정하려니 고민이라는 둥, 퀼트로 만든 언니의 생리대 가방을 부러워하며 자기도 꼭 저렇게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미리 해 두는, 7살 차이가 나는 언니가 있어서인 지 또래 아이들 보다 성숙한 듯 한 아이.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쇼프로를 본다는 이유로 가장 유치하다는 취급(?)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텔레비전을 보는 내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는 ‘저기 방청객으로 간 언니들은 노래가 좋은 거예요 아님 노래하는 저 오빠가 좋은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노래보다는 오빠들이 좋아서 그러는 것 같은데 어머니도 혹시?’하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추궁하듯 나를 보는 아이.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 하는 행동은 아닐까?
학교 가는 길에 마음에 담아 둔 아이와 마주치고 ‘안녕’이라는 인사 한마디를 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는 아이를 보면서, 그 아이가 짝이 되기를 바랬는데 다른 아이와 짝이 되어 ‘기분이 우울하니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아이를 보며 언제 저렇게 컸나 하는 흐뭇하고 대견한 마음과 함께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행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 중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교 문제. 아이는 아직은 크리스마스와 선물 때문에 갈등을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큰 갈등이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내 어머니께서 내게 많은 것을 허락해주시고 경험하게 해 주시고 믿고 내 의사를 존중해 주셨듯이, 그리고 큰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아이에게 맡겨 두려 한다.
그러면서 아이를 위해 미리 사 둔 책,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
첫 아이를 임신했을 적에는 노래를 너무 좋아하는 나의 단순한 생각에 아이가 노래를 많이, 적어도 일주일 한 번은 부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을 성당이나 교회에 보내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기독교 학교에 근무를 하다보니 학교에서 기도를 하거나 찬송가를 부를 일이 적지 않은데 학생들은 내가 어찌나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는 지 정말 깜빡 속았단다.
“여러분들을 위한 기도인데 선생님의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노래는 그 어느 것인들 우리의 가슴을, 영혼을 울리 지 않는 것이 없으니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할 뿐이지요. 누구를 향한 기도인가가 중요할까요? 선생님은 누구를 위한 기도인 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위해 하는 기도이기에 진실로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 거랍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하는 것이고요.”
새벽 기도를 하러 찾아 간 산사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별들의 아름다움을 가슴 가득 담으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우리 아이들이 내 곁에 있음에. 그리고 그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음을.
▣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는 어떤 책일까?
6학년 마거릿. 새로 이사 간 곳에서 만난 친구 낸시의 수영복을 빌려 입으며 자신의 몸이 아직 성숙되지 못한 것이 속상하다. 낸시는 언젠가 하게 될 키스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단다.
친구들과 비밀 클럽을 만들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남자 아이의 이름을 적는 놀이도 하며 ‘나는……나는 ……가슴을 키울 거야’라며 운동을 하며 깔깔거리며 웃는 마거릿을 만나면서 내 10대의 시간들이 생각나면서 연신 입가에 웃음이 번져왔다.
백과사전에서 성에 관한 단어들을 빨리 찾는 내기를 하기도 했던, 브래지어를 먼저 한 친구를 마음으로는 무척 부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무심한 척, 아니 놀래대기까지 했던 그 시절.
마거릿이 키가 크고 성숙한 몸매를 가진 로라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난히 키만 크고 밋밋한 몸, 그래서 또래 아이들 보다 키가 큰 것이 도리어 컴플랙스였던 나였기에 마거릿편이 될 수도 로라편이 될 수도 없어 갈팡질팡하기도 하며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가족, 친구, 그리고 담임선생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성에 관한 관심, 종교 문제까지. 번역서이다보니 우리와 조금 다른 문화들이 가끔 낯설기도 하지만 내 그 시절을 작가에게 훤히 들여다보인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어벙벙해지기도.
아홉 살 정빈이가 읽기에는 조금 벅찬 듯하지만 언젠가 아이에게 이 책을 선물 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주디 블룸 지음/김경미 옮김/비룡소
2004년 11월 책나무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