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정빈이가 문제집을 푸는 까닭은?

착한재벌샘정 2004. 10. 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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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정빈이는 지금 문제집을 풀고 있는 중입니다.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느껴지시죠? 내일 10월 학업성취도 평가가 있답니다.

어머, 무슨 일이야? 아이 시험공부를 다 시키고?

이러실 분 계실 겁니다.

 

정빈이가 지금 문제집을 풀고 있는 것은 내일 시험을 위해서 라기 보다는 문제집을 사달라고 한 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어제 갑자기 문제집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겁니다.

“이러~~어케 긴거, 이렇게 넘기는 걸로 사 주세요. 한 과목만 있는 거 말고 전부 다 있는 거요.”

이렇게 졸라대는 통에 거금 7,500원을 주고 샀는데 어제는 친구와 같이 즐거운 생활을 열심히 풀더군요. 음악 이론을 배운 적이 없어서인지 정빈이는 즐거운 생활, 그 중에서도 음악이 제일 어렵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런 말을 남기고 학교로 갔고요.

“어머니, 오늘 너무 바쁠 것 같아요. 오늘 문제집을 다 풀려고 하면....내일 시험 치는데...”

다 풀었느냐고요? 그럼 지금 사진 속의 모습으로 저러고 있겠습니까?

감기는 들었는데 온기 하나 없는 집에서 코는 훌쩍거리며 온 몸을 비틀면서 문제를 풀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리 양말을 신으라고 해도 답답하다고 안 신고 반대쪽 카펫 위에 앉으라고 해도 무슨 고집인지.

 

“다 풀었니?”

“국어 한 장, 딱 한 장 풀었어요. 수학 한 장만 풀고 지원이랑 놀 거예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정빈이가 풀었다는 국어 문제는 1학기 총정리 문제였습니다. 아이 말처럼 이렇게 긴 문제집은 처음 풀어보는데다가 2학기 문제집 앞에 1학기 복습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가 없으니 그냥 제일 첫 쪽을 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물론 위에 1학기 총정리라고 적혀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것을 챙겨 본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정빈이가 풀어 본 문제집은 수학 문제집 한 권이 전부였고 1학기 것이라 이런 경험은 처음이거든요.

 

감기까지 들어 힘들어하고 있는 아이에게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시험공부를 시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학 한 장 만 풀고 지원이랑 놀 거예요.”

“안 돼. 그거 다 풀어.”

“싫어요. 한 장만 풀고 놀거란 말이에요.”

“안 돼. 다 풀어.”

“왜요? 왜 다 풀어야 해요? 머리 아프고 힘들단 말이에요. 그리고 놀고 싶고.”

“그럼 문제집은 왜 사달라고 했지?”

“그냥 사고 싶으니까요. 문제 푸는 것은 싫단 말이에요. 힘들고 어려워요.”

“문제집이 장난감이니? 사고 싶다고 사게? 장난감도 사면 가지고 놀아야 하잖아. 물건을 사는 것을 그렇게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 네가 사달라고 졸랐으니까 시험 범위까지는 다 풀도록 해.”

“수학도 즐생도 바생도 다요?”

“당연하지. 당장 네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생각해서는 안돼. 꼭 필요한 물건을 사야하고 샀으면 그것을 최대한 사용을 해야지. 시험공부도 중요하지만 엄마는 네가 오늘 더 큰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칠천오백원이라는 돈은 아주 큰 돈이야. 그리고 이 문제집은 내일 있을 시험을 위해서 네가 사달라고 한거고. 그랬으면 시험 치기 전에 필요한 부분까지는 문제를 풀어야겠지?”

 

사진 속의 정빈이는 수학을 풀고 있었는데 수학 3장을 다 풀고 지금은 슬기로운 생활 문제를 풀고 있는 중입니다.

어쩌면 정빈이는 앞으로 문제집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일로 인해 시험공부라는 것이 싫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저희 반 학생이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사진을 찍다가 교과 선생님에게 빼앗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빼앗긴 휴대전화는 광고에서나 보던 옆으로 돌려지는 최신형이더군요. 얼마 전 아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다른 것이었는데 새로 산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지불하지 않으니 돈의 가치를 너무 적게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요?

언제든지 말만하면 척척 사주는 부모로 인해 말만 하면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소유하는데 익숙한 아이들이 많을 겁니다.

 

다른 아이들이 문제집을 가지고 와서 아침 자습 시간에 공부를 하니 정빈이도 문제집이 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막상 사서 문제를 풀어보니 어렵고 힘드니 하기 싫겠지요.

 

오늘 제가 정빈이에게 문제집을 풀리는 이유는 물건을 샀을 때는 그것을 최대한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그저 순간의 갖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물건을 사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서입니다.

 

드디어 춤(?) 추기 시작했습니다. 행위예술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종묘 시장이 뭐예요? 종묘 시장에서는 뭘 팔아요?”

“국어사전 찾아 봐.”  

바생은 하지 말고 놀자고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다 정말 아이 잡겠습니다, 그죠?

감기 몸살이 심해져 내일 학교도 못가는 거 아닌지....

 

갈등하며 칼럼을 마무리했는데 정빈이는 서서히 신(?)이난 모양입니다.

바생까지 다 하고 답지를 보며 확인을 해본다네요.

앗! 잠시 안 본 사이 정빈이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ㅎㅎ

집이 춥긴 춥나봐요.

양말 신고 반대쪽 카펫이 깔린 곳으로 자리도 옮겼고 목에 털목도리까지 두르고 있습니다요!!!! 이 모습 보여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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