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것은 다 있어
지난 토요일에 정빈이와 지니와 함께 달리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남편은 직장 동료들과 가을 여행을 갔고 예슬이는 친구와 같이 가느라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전시가 17일까지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가게 되다보니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전시회 입장권은 지난 9월 남부 도서관에서 저자와의 만남 시간에 제 강연을 들으신 분이 선물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와의 만남이 너무 좋아 도저히 그냥은 갈 수 없다며 주신 선물이었어요. 저 또한 감사히 받았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17일까지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 뭡니까. 인터넷으로 전시회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 본 예슬이가 16일까지더라고, 그것도 16일 아침에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아까운 것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토요일 아침 출근길에 지니에게 오후에 만나자는 문자를 넣으니 약속이 있다더군요.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라 약속이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전화를 해 같이 가자고 졸라댔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졸라대다, 떼를 쓰다 등등의 말이 다 동원되어도 틀리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장장 8분 30초나 전화기에다 대고 함께 가자고 설득을 했지요. 저의 무료 통화에 치명적이었습니다. ㅎㅎ
관심 없다, 그런 곳에 가 본 적 없다, 아니 가 봤는데 자기와는 안 맞는 것 같더라, 다른 약속이 있다, 정말 싫다, 정말 왜 이러느냐 등등.
하지만 결국은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시회는 정말 좋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간다며 집에 남아 있던 예슬이에게 빨리 보라고 정말 멋지다는 연락을 했을 정도니까요. 정빈이는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하더군요. 달리의 작품 몇 개를 자신이 준비해 간 공책에 옮겨 그리기도 하고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에서 차이점을 발견해보려 애를 쓰기도 하고.
오빠가 기다리니 빨리 나가자는 저의 재촉에 못내 아쉬워하며 전시회장을 나왔답니다.
“선생님이 전시회를 보고 난 뒤에는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말했었는데 솔직히 그런 기대는 하지 않았어. 지금의 네 표정이 말해주고 있잖아. 거 봐요.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고 관심 없다니까요, 라고.
하지만 그럴 줄 알면서도 선생님이 그렇게 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너와 함께 온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문화란 결국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그래서 낯설고 두렵기 까지 한 순간이 있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두려움을 주기도 하거든.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이라는 것은 다 있어. 그것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누구와 경험하느냐하는 것의 차이, 영원히 그런 경험 없이 살아가는 경우도 많고. 모든 사람이 다 미술 전시회를 다니고 그것에 열광하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어. 그건 극히 개인적인 취향일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 번도 접해 보지 않는 것 보다는 경험해보고 선택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해. 선생님과 지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을지 몰라. 그 동안 선생님은 너에게 새로운 것들, 네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게 해주고 싶어. 세상은 정말 넓어. 그것을 조금이나마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작년 우리 탁이와 같이 오페라하우스에 갔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 시작부터 목이 메어왔지만 지니에게 꼭 해주어야 할 것 같아 이야기를 이어갔지요. 지니도 저와 함께 탁이가 있는 절에 가 본 적이 있기에 탁이 형이 누구인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 지 잘 알고 있답니다. 제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지니는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더군요.
지니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면서 보통 같으면 같이 가 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을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니 나름대로 생각해 볼 여유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는 아이들과 함께 <JUST 스튜디오>
아직 무엇을 배울까 결정하지 않은 정빈이는 어제부터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 번 크리스마스에는 엄마와 함께 캐롤을 많이 부르고 싶다면서요. 지금 연습하고 있는 곡은 ‘창밖을 보라’입니다. 그러면서 이러더군요.
“어머니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특별히 더 즐거울 것 같죠? 저와 같이 노래를 많이 부를 수 있을 테니까요. 그죠?”
아마 한동안 저는 정빈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창밖을 보라를 열심히 부를 것 같습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 지원이에게 좀 도와달라고 해야겠다며 아주 열의가 대단하거든요. 캐롤을 잘 치게 되면 결혼식 때 치는 것도 해보겠다네요. 학원이나 교습은 받기 싫고 그냥 그렇게 혼자서 해보겠다고 하니 지켜보아야겠지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지니와 남은 시간동안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