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소통하고픈 절절한 욕구는 우리 모두의 공통분모

착한재벌샘정 2007. 4. 24. 12:01

정빈이가 오늘 중간고사를 칩니다.

정빈이는 이번 시험 준비를 아주 열심히 했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퇴근한 저를 졸라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사더니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를 했습니다. 아프고 난 뒤라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정빈이가 하는 대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자신이 세운 계획에 맞추어 열심히 하더군요.

그리고 어제 오후에 학교에 있는 제게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 오늘 피아노 가지 않고 시험 공부해도 되요?”

내일이 시험이니 시험공부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뜨레쥬르에서 파는 초콜릿을 사오라는 겁니다. 시험 칠 때 초콜릿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요. 알아서 하라고 하고는 퇴근해 집에 가니 단짝인 지원이와 거실에 마주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의논도 하고 모르는 것은 가르쳐주기도 하며, 때론 깔깔거리며 웃어가며....

정말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원이 오늘 영어 가는 날 아니니?”

“엄마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영어 가는 지 시험 공부하던 지. 그래서 정빈이와 같이 시험 공부하기로 했어요.”

“그래? 우리 공주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그러자 둘이 합창을 하더군요.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는 거실에 있는 칠판에

‘8시 30분까지 시험공부. 정숙’이라고 적은 것을 가리키며 제발 조용히 하라는 겁니다. 별표까지 해두었더군요.

사정이 있어 정빈이 담임선생님이 며칠 전 바뀌었습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라는 제목의 기초조사서를 보내셨더군요. 주말에 가져 온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쓰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잘하는 과목, 부족한 과목을 적는 곳이 있기에 정빈이에게 물었습니다.

“다 잘하는데 다 적을까?”

“헐.... 그건 좀....”

“그럼 잘하는 과목에 뭘 적어줄까?”

“으음~ 과학이요.”

“그래? 알았어.”

“부족한 과목은 안 물어요?”

“부족한 과목? 없잖아? 없다고 쓸 건데?”

“그게 쫌..... 선생님이 뭐라고 하실런지....”

“사실인데 뭐. 어머니가 보기에는 부족한 과목이 없는데.”

정빈이가 많이 어른스러워 졌다는 것을 그 다음 말에서 느낄 수 있었답니다.

“어머니 기준이 너무 낮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전혀....”

“사회는 좀 부족한데.....”

“그 정도면 잘하는 거야. 뭐가 부족해? 잘하고 있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더 잘하게 될 텐데.... 부족한 과목은.... 없음. 됐다.”

“사회 진짜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에구구 쬐끔 부담.....”

부족한 게 없다고 적어주는 엄마가 부담이 되었나 싶기도 했지만 알아서 한다니 그냥 지켜보기로 했지요.

아이들이 공부한다고 마주 앉아 있으니 저와 지원이 엄마는 할 일이 없어서 수다를 떨 수밖에 없었는데

“쉿! 조용히 해주세요. 저거 안 보여요? 정쑥!

결국 두 번의 경고(?)끝에 방으로 쫓겨 들어가야 했답니다.

“정빈이 담임 놀라겠다. 부족한 거 없다고 적어 보냈으니....”

“그래? 정빈이 말처럼 다른 과목에 비해 사회를 어려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자신이 알고 있고 그래서 특히 신경을 더 쓰니까. 사회가 좀 부족하다고 적어 보내면 선생님이 조금 신경을 더 써 줄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래서 얻을 수 있는 효과보다는 난, 사회를 진짜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더 강화시켜주는 게 될 수도 있어. 공부는 결국 스스로의 필요와 의지가 제일 중요한데 그걸 굳이 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 했어. 정빈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갈수록 더 하기 싫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았대.”

“어떻게?”

“정빈이가 체력이 약하니까 학교에서 보건실에 갈 때도 있고 간혹은 수업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리기도 한대. 물론 선생님이 정빈이 상황을 아니까 봐주시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그 다음이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 거지. 지난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다 보니 이번 시간 수업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게 될 때가 있더라는 거지. 선생님 이야기를 못 알아들으니 수업이 재미없고 당연히 지겨운 시간이 되어버리고. 그 때 문득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림 그리. 책에 있는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니 그것에 몰입하게 되고 재미있으니 시간도 너무 잘 가고. 그래서 그 다음 시간에는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그림만 그리게 되고. 그런데 문득 수업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지만 지난 시간까지 낙서하면 놀던 결과로 인해 선생님 이야기는 더더욱 모르는 이야기뿐이고. 들어보려 애써보지만 곧 포기하고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고. 이런 일들이 며칠 계속되니 수업이 점점 듣기 싫어지더라는 거지. 그런데 다행인 것은 과학을 워낙 좋아하니 과학시간에는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스스로 알았대. 모르면 수업이 계속 더 힘들어 질 거라는 거. 그리고 지난번에 수업시간에 만화 그리는 것으로 이야기 했던 것도 생각나고. 그래서 결국 공부는 자기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군. 그래서 수업도 열심히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대. 집에 수험생이 둘이니 분위기가 숙연 해지는군, 했더니 깔깔 넘어가는 거 있지?”

“수업시간에 만화를?”

“교과서 여백에다 빡빡하게 그림 그려놓은 거 있지. 그거 보여주면서도 이게 제일 잘 그렸죠? 이러는데.... 수업 재미없어 그림 그리며 딴 짓하는 거 두 번 경험하더니 철이 좀 든 모양이야.”        

“언제 재울거야?”

“8시 반까지 한댔으니까 그 때쯤 재우지 뭐. 일찍 자야 시험이라도 치지. 안 그러면 시험 치다 잘지도 모를 일이니.”

그리고 오늘 아침. 5시에 깨우라던 정빈이는 6시 40분이 되어서 겨우 일어났답니다. 어제 사다 준 초콜릿을 하나 먹고는 아침밥을 먹고 학교 갈 분비를 하더군요.

“실수만하지 않으면 돼. 그건 좀 억울하잖니?”

“알아요. 특히 수학요. 문제 잘못 읽어서 틀리곤 하니까. 잘 읽도록 할게요.”

“이번 시험 쳐보고 생각만큼 잘 치지 못하면 문제집을 늘 사야겠어요.”

“왜? 문제집을 늘 사다니?”

“제가 꼭 시험 때가 되어야 공부를 하잖아요. 일명 벼락치기. ㅋㅋ 그러니까 이번 시험 점수 안 좋으면 이제부터는 평소에 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 그런 생각까지 했어? 그건 시험 치고 난 뒤에 생각하자. 오늘 일에 집중하는 게 중요해.”

“알아요. 열심히는 치겠지만.... 결과가 안 좋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알았어. 기특하구나.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으니 말이야. 사랑해 공주, 파이팅!”

이렇게 아이는 스스로의 생각을 키워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답니다. 결과에 따라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도 생각할 만큼 훌쩍 자란 아이......

이렇게 정빈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저를 참 행복하게 합니다. 아이와의 소통이 그래도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이들에게 부지런해야 한다는 의미로 하는 말 중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말.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 그 말에 대한 신선한(?) 표현이 있어 소개를 합니다.  <동정 없는 세상>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책 표지는 인터넷 교보에서 가져왔습니다.>

 

<일찍 일어는 새가 먹이를 잘 잡는다고 했던가. 이 말은 새에 관해서만 부분적으로 맞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고작해야 먹이가 되려고 일찍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똑같이 일찍 일어났는데 누구는 하루 밥벌이를 하는데 반해 바로 그 밥벌이 때문에 다른 누구는 생명을 잃는다. 그렇다면 일찍 일어나는 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새로 태어나는가 혹은 벌레로 태어나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떠신가요? 늘 새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했던 저에게는 신선함을 넘는 무엇을 남겨주었습니다. 주인공의 표현으로 수능을 친, 번듯한 대학생도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재수생도 아닌 시기를 살고 있는 곧 스무 살이 될 아이의 시각에서 쓰여 진 소설입니다. 성장소설의 영역에 포함시켜도 될듯합니다. 표지에 적힌 수상작가 인터뷰에서의 한 대목입니다.

 

<세계를 재고 자르는 기준이 여자친구 서영과 ‘한번 하기’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는가로 일관되는 ‘경박한’십대 준호의 관점에서 성인들 세계를 요모조모 살피게 되고, 요리조리 재고 자르는데, 너무 뻔해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이내 큭큭거리지 않을 수 없다.

(중략)

그는 소설을 재미있고 가볍게 쓰되 그 안에 진지함과 무거움을 담을 줄 안다.>

하나 더 소개하고 싶은 대목이 있어요.

<영석이 말로는 부모가 툭하면 서영이와 가기를 비교한다는 것이었다. 서영이는 여자인데도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는데 너는 도대체 왜 그모양이냐.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비교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웬만큼 공부를 잘하는 녀석들이 더 시달리고 있었다. 영석이만 해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도 그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같은 놈이었다. 바로 '그 집 아이'라는 놈이다. 그 집 아이는 대한민국 학생들의 공적이다. 그 집 아이는 공부 잘한다는데, 그 집 아이는 서울대 갔다는데, 그 집 아이는 상 받았다는데, 그 집 아이는 도무지 부모 속 썩이지 않는다는데,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런 식이다.>

공공의 적이라는 '그 집 아이'.....

 

이 참에 또 한 권의 책을 소개할게요. <17세>입니다.

<책 표지는 인터넷 교보에서 가져왔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바탕 화면에 가출한다고 적어놓고 집을 나간 딸. 그 딸과의 소통을 위해 컴퓨터를 배우고 메일을 보내는 엄마. 그 메일 속에는 딸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딸의 나이와 같은 엄마의 17세가 들어 있답니다. 자신의 그 시절을 들려주며 딸을 향해 다가가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와 딸, 두 사람의 모습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사춘기 아이 때문에 힘들다는 친구에게, 가출한 딸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학부형에게, 엄마 때문에 못살겠다는 아이에게 권해주었던 책입니다. 소통의 방법은 극히 개인적일지 모르지만 소통하고픈 절절한 욕구는 우리 모두의 공통분모일거라는 생각입니다.